책을 읽는 다는 것
책을 읽는 다는 것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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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어머니는 미수(米壽)시다. 아직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 실만하고 정신도 맑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6년째 혼자 사신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최근에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머니는 한동안 눈이 침침하다고 호소하셨다. 안과에 모시고 갔더니 황반변성이란다.

나이 들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져도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셨는데, 눈에 대해서는 민감하시다. 눈이 안보이게 될까봐 걱정하신다. 마취를 하고 눈 주위 피부를 떼어내는 조직검사까지를 마친 후에야 병원을 나섰다.

눈병을 유난히 두려워하고 치료에 집착하시는 이유를 물었다. 아들얼굴을 못 볼까봐, 어디 나다니기 어렵고 갑갑할까봐 같은 상투적인 답변을 하실 것 같아 스치듯 지나가는 말로 물었는데, 의외의 답변을 하신다. 눈이 안보이면 혼자살기 어려울뿐더러 책을 읽지 못할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어머니는 혼자 사시려고 마음먹으신듯하여 자식과 함께 살기 싫으신가하는 섭섭함도 있었지만 흔쾌히 같이 살자고 하실 만큼 잘 모시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이 컸다. 그리고 눈이 안보여 책을 읽지 못할까 두렵다는 말씀은 크게 마음을 울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하려면 외재적 요인으로 적당한 재산, 명예와 지위, 선의의 친구들이 있어야하고, 내재적 요인으로는 도덕적, 지적탁월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머니 나이쯤이 되면 가지고 있는 재산도 그렇게 믿을만한 것이 못되는 듯하다.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욕망의 크기만큼 재물에 대한 의존도나 가치도 줄어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 많은 친구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거동이 불편해 서로 왕래조차 어려워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의 외재적 요인은 모두 사라진 셈이다. 그래선지 가장 친구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책 읽기와 TV드라마 보기, 간단한 걷기운동으로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계신다. 그러니 책을 읽지 못하게 된다는 상상은 어머니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눈의 상태가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쉽게 올 수 있는 가벼운 증세임을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아들이 육성으로 책을 읽어 드릴 테니 걱정 마시라고 큰 소리 뻥뻥 친 다음에야 어머니의 걱정을 겨우 가라안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만약 눈이 안보이게 된다면 무엇을 걱정할까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았다. 잡다한 생각만 스쳐 지날 뿐 냉큼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머니처럼 책 읽기는 아니었다. 은퇴 후 하는 일이 고전읽기 지도를 하고 있음에도 책읽기가 절실하게 와 닫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내안에 욕망의 찌꺼기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88세의 할머니가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축복 같다. 몸은 여기저기 불편하고 거동은 힘들어도 정신은 맑아 살아온 세월과 먼저 떠난 친구들을 추억하며 책을 읽으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경로당에 가는 것보다 책읽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책 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책읽기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책을 읽는 행위들이 쌓여 독서습관을 만든다. 나이 들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외재적 행복의 조건들, 즉 재산이나 지위, 친구들이 사라졌을 때도 우리를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재적 요건인 지적, 도덕적 탁월성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적, 도덕성 탁월성으로 이끄는 독서야말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수레바퀴와 같다. 책읽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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