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여운
영화 기생충의 여운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6.12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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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기생충! 징그럽고 소름끼치는 참 불쾌한 단어입니다. 그 기생충이 종합예술의 총아인 영화제목이 되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2019년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한국영화 100년의 숙원을 푼 영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설을 깨고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영화이니 범상한 영화가 아닙니다.

기생충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생명체에 일정 기간 또는 일생 기생하며 사는, 자신의 삶을 위하여 다른 생명체에 붙어살이하는 벌레를 이릅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구요.

기생충이 바로 현대사회에 암약하고 있는 인간 기생충들을 그린 영화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메가폰을 잡은 봉준호 감독의 세상을 보는 해학적 시선과 그런 인간군에 대한 연민의 정이 가득한 걸작영화입니다.

영화는 절묘하게도 부자인 박 사장(이선균 분)네 집 네 식구와 빈자인 기택(송강호 분)이네 집 네 식구 간에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스토리지만 관객들에게 황당함과 서글픔과 한숨과 분노와 공포를 주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박 사장네는 유명건축가가 설계하고 지은 그림 같은 호화주택에서 예쁜 아내와 고등학생 딸과 유치원 다니는 어린 아들과 유복하게 살고, 기택네는 취객들이 노상방뇨를 일삼는 빈민가 골목길 반 지하방에서 투박스러운 아내와 과년한 아들과 딸과 어렵게 삽니다.

이런 기택의 식구들에게 어느 날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옵니다. 영어를 잘했으나 돈이 없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백수로 지내는 기택의 아들 기우에게 유학을 떠나는 명문대생 친구가 찾아와 귀국할 때까지 자신이 맡은 박 사장 딸의 과외교사로 들어갈 것을 제안받고 그 자리를 꿰찹니다.

기우가 과외교사로 신임을 받자 세상물정 모르는 박 사장 부인 연교(조여정 분)를 꼬드겨 여동생을 아들 미술선생으로 앉히고, 급기야 아버지를 박 사장 운전기사로 어머니를 가정부로 앉힙니다.

을이 제 욕심 채우려고 기존에 있던 을을 음해하고 모함해 그 자리를 빼앗는, 갑은 수족처럼 부리던 을을 어느 날 그럴듯한 사유를 달아 해고하는 냉혹한 갑질을 합니다.

그러나 불의한 을과 갑의 이익과 성취는 오래가지 못하고 파국을 맞습니다. 박 사장네 가족이 1박 2일 캠핑을 떠나자 기택이네 네 식구가 박 사장 집 거실에서 술판을 벌이며 숙주가 될 꿈에 젓습니다. 이때 쫓김을 당한 가정부가 초인종을 누릅니다. 놓고 간 물건이 있어 찾아가려 하니 문 열어달라고.

그럴 것이라 믿고 그녀를 집안으로 들였는데 그녀가 비밀 지하통로 내려가 숨겨둔 남편을 만나면서 사단이 납니다. 쫓겨난 가정부가 기택이네 식구들의 사기행각을 알고 박 사장 부부에게 알리려 하자 이를 결사저지하려는 기택네와 사투를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정부가 피살되는 끔직한 일이 벌어지고 영화는 공포로 변합니다.

캠핑 갔던 박 사장 가족이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오자 불을 켰을 때 쏜살같이 흩어지는 바퀴벌레와 같이 기택네 식구들은 혼비백산해 흩어져 숨습니다.

박 사장 아들 생일파티가 성대하게 열리던 날 을도 죽고 갑도 죽는 죽음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복수의 칼을 휘두른 가정부 남편도, 기택의 딸 제시카도 죽고, 박 사장도 기택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숙주도 죽고 기생충도 죽는 공멸의 한 모퉁이에서 부자가 되겠다는 기우의 공허한 독백이 흐르고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계획이 없는 계획(No Plan)이 좋은 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이 귓전을 맴돕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에 기생하는 인간 기생충들. 갑을 꿈꾸는 수많은 을들. 태어날 때부터 숙주인 자와 기생충인 자가 있는 현실 앞에 할 말을 잃습니다. 구역질이 납니다. 구충제를 사먹어야겠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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