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트루드 지킬의 정원
거트루드 지킬의 정원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9.06.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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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6개월간 열심이었던 정원공부가 끝났다. 1월 눈길을 헤치고 찾았던 속초 정원학교, 6월 손부채를 부치며 마쳤다. 노란 크로커스를 시작으로 벚꽃, 앵두나무 꽃, 머위, 작약 철 따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빨갛게 익은 보리수를 맛보았고, 흐드러진 밤꽃 사이로 10월의 알밤이 보이는 듯도 했다.

정원은 인위적인 공간의 하나다. 흔히 사람들은 정원을 자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을 재료로 철저히 사람 중심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정원이다. 정원에서는 사람의 계획에 따라 꽃이 피고, 잎이 물들고, 열매를 맺는다. 색깔도 형태도 다 경관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흔히 사람들이 영국정원이라고 말하는, 마당 가득 색색의 꽃이 피어, 흡사 풍경화를 보는 듯 그려내는 정원 양식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정원을 만들어낸 작가는 거트루드 지킬이다. 거트루드 지킬은 화가였었다. 그러나 그녀는 근시가 너무 심해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지자 물감과 캔버스가 아닌 정원이라는 공간 속에 꽃과 풀이 가진 색, 질감 형태를 이용하여 예술을 펼쳐보였다. 자수 화단이라 불리는 유럽의 정원에 식물 자체가 지닌 색, 질감, 형태로 생기를 불어넣은 작가, 그녀의 스타일은 정원뿐 아니라 많은 정원사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정원학교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거트루드 지킬의 독창적 식물 디자인은 당시 시대 상황과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낸 철학가, 예술가들의 합동 작업이라 한다. 그녀는 산업혁명이 끝난 직후, 사람들의 마음에 획일적 생산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할 무렵 태어났다. 당시는 대량 생산의 경제 논리에 대한 반동으로 옛것으로의 회귀가 사회문화적으로 재조명되던 시대였다. 그 회귀를 이끈 문화 운동이 바로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이다. 이 운동은 모든 생활용품을 대량 생산이 아닌 장인의 예술 감각에 의해 한정품으로 만들던 중세의 공예 예술을 회복하자는 것으로 거트루드 지킬은 그 운동에 적극적인 예술가였다.

또한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정원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자수화단으로 대변되는 기하학적 패턴, 정교함, 인위적 예술성이 아닌 자유로움, 자연스러움, 낭만 등 식물 자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것으로 관점이 변한 것이다. 거트루드는 이러한 자유로움, 자연스러움, 낭만을 표현하기 위해 한두해살이 또는 여러해살이 풀 즉 초본 식물에 주목하였다. 겨울이 되면 모두 사라지는 풀들은 살아있는 동안 극적으로 변화했고, 열심히 꽃피웠으며, 이런 식물들을 기반으로 그녀는 `그레이 가든', `골든 가든', `블루 가든', `그린 가든'이라 불리는 그녀만의 색과 질감을 가진 정원을 탄생시켰다.

거트루드의 정원이 사랑받았던 이유는 단 하나, 식물들이 저마다의 색 그대로 건강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렇게 식물을 키워낸 비결을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말한다. 가장 좋은 가든 디자인은 식물의 자리를 잘 잡아주는 것이고, 식물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방학을 앞둔 캠퍼스는 기말고사로 분주하다. 내 한 학기 정원공부가 끝이 났듯이 2019년 1학기의 공부가 끝나가고 있다. 캠퍼스는 캄푸스 즉 초원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학교는 일종의 정원인 셈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 캠퍼스, 이 정원 속에는 거트루드 지킬이 꿈꾼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 낭만이 숨 쉴까? 아니면 기하학적이고, 정교하며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지배할까?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정원인 학교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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