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냄새를 담는 미술관
세상의 모든 냄새를 담는 미술관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19.06.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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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빈자와 부자의 사회계급을 `냄새'라는 장치로 나타냈다. 감독은 “냄새라는 것이 사실 사람의 그 당시의 상황이나 형편이나 처지가 드러나지 않나. 온종일 고된 노동을 하면 몸에서 땀 냄새가 나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지켜야 할 우리의 어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지 않나. 그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붕괴하는 어떤 순간 같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냄새 그리고 향기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향기'는 좋은 냄새에 쓰는 말이지만 `냄새'는 향기를 포함해 더 넓은 뜻을 가지는 말이다. `향기'는 `꽃, 향수 등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뜻하는 말이고,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뜻하는 말이다.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간에 사람들은 각자 그 사람이 갖고 소유한 인품만큼의 냄새와 향기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꽃향기처럼 사람도 저마다 개인적 소유의 향기를 가지고 있다. 꽃의 향기는 본래부터 타고난 것이지만 사람의 향기는 일상의 삶을 통해 선택되고 창조되고 새로워지고 두터워진다.

일상의 삶의 흔적들이 모여서 누군가의 향이 된다. 여러 일상의 흔적이 향이 되기 위해서는 축적이 이뤄져야 하며 이것이 모여 그 사람의 냄새가 된다. 따라서 향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이 모여 만들어지며 우리는 이것을 인생이라 한다. 그 인생의 두꺼운 냄새 속에서 가슴에 스며드는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도 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도 공간만의 독특한 냄새가 쌓여 있다. 라폼므현대미술관이 있는 이정골은 새벽녘부터 이정골 어르신들의 두꺼운 냄새가 마을을 감싼다. 오전 10시가 넘으면 이웃 어린이집 꼬마들의 깨알 같은 풋풋한 향기가 마을을 돌아다니고 오후가 되면 이정골 버스종점에서 하차하는 여러 사람이 꾸역꾸역 작은 도시의 냄새들을 담아서 마을로 들어온다. 이렇게 마을 전체를 감싸는 냄새를 맡고서 마을 속 라폼므현대미술관으로 들어오면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미술관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과 작가들로 인해 미술관의 냄새는 항상 다양하고 새로운 향기를 풍긴다. 미술관에서 나는 냄새는 인간의 두꺼운 냄새, 층층이 쌓인 사회 깊숙한 묵은 냄새도 있다. 그 냄새들은 미술관 작품 속에 숨겨진 비린내, 가끔은 향긋한 향기와 썩은내 그리고 피냄새가 나기도 한다. 작품 전체를 통해 인간의 오만가지 냄새가 시간과 기억, 사람들과 겹겹이 쌓인 장면들이 마치 아주 오래된 다락방 같은 냄새를 풍긴다. 어느 날, 어린이집 아이들이 미술관을 다녀가고 나면 미술관 곳곳과 작품 속에는 아기 향기가 종일 머물러 있다. 그리고 노인대학 어르신들이 오신 날이면 무겁고 두터운 냄새가 허파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겨울 외투 같은 따듯한 냄새가 미술관을 덮기도 한다. 이렇듯 미술관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로 인해 미술관의 냄새는 항상 새로운 향기를 풍기며 세상의 추억과 인생의 냄새를 한 움큼 들이켜 볼 수 있다. 공간과 시간, 시각과 냄새를 담은 4D체험을 하는 곳이 미술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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