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안 <백운사 주지스님>

한 곳에서 백이십살을 산 노파가 있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그렇게 오래 사셨으니 그동안 신기한 일이나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만 말씀해 주시지요."

그러자 노파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물론 가끔은 그런 일들이 있었겠지만, 다 잊었다오."

"그래도 기억나는 게 있을텐데 생각을 한 번 해보세요"

노파가 생각에 잠기더니 주름이 심하게 잡힌 얼굴을 들어 절망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스무번이나 죽음을 당한 괴로운 일이 있었다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노파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스무번이나 죽음을 당했다니.

남자가 궁금증이 일어 무슨일인지 캐묻자 노파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자식을 얻고, 자식들은 손자를 낳고, 손자들은 증손자를 낳았소. 그러나 사람의 목숨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죽는데 있어서는 순서대로 가지 않고, 나보다 먼저 죽은 자식과 손자들이 족히 스물이나 될 것이오. 그때마다 장례식에 참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사람들은 내 앞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뒤에서는'이 집의 할머니와 목숨을 바뀌어야 하는데'라고 말했지. 그나마 사람들은 뒤에서라도 수군거리지만 자식과 손자들은 면전에서 거리낌없이 이런 말을 해대니,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소. 남들은 오래 사는 것이 복받은 일이라 하지만 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오."

일생을 두고 갈구하는 '행복'이란 것은 일관되지 않는다. 그 가치도 강제로 되지 않기에 각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도 다르기 마련이고, 또 그것을 누구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난감한 일이다.

나의 기쁨이 남과 어울리기 어렵고, 나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지도 않는다.

선쾌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좋은 말을 한 가지 해달라고 하자 '조사(祖死), 부사(父死), 자사(子死), 손사(孫死)'라고 써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니! 하필이면 줄초상이란 말인가"하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을 본 선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위부터 순서대로 가는 게 제일 좋은 게 아닌가. 순서가 바뀐다고 해보게."

얼마나 더 살지 기약이 어려울 것 같은 사람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들녘에 벚꽃이 피면 구경가자는 식구들의 말에도 환자는 반응이 없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그의 손을 잡고 모든 사람들이 겪는 흔한 일로 마음 아파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시길 바란다. 병상의 환자가 이 말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따스한 봄기운에 얽히고 설킨 감정의 매듭이 술술 풀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