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골 부부
웅골 부부
  • 최승옥 수필가
  • 승인 2019.06.1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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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승옥 수필가
최승옥 수필가

 

초록이 물드는 6월이다. 낮 기온은 벌써 여름을 방불케 한다. 산과 들에는 온통 진초록으로 물들고 우리 과수원 복숭아나무 이파리들은 뜨거운 햇살에 반짝인다.

과수원은 요즘 복숭아 열매솎기에 한창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애기복숭아가 대롱대롱 매달리더니 이제는 제법 자라 토실토실하다. 포도처럼 올망졸망 매달려 서로 끌어안고 있는 알들을 솎아내려니 애처롭다. 마치 솎아내기를 아는 듯 땅바닥에 안 떨어지려 안간힘을 쓰는 것만 같다. 생각 같아선 모두 수확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나뭇가지도 힘이 들고 열매 또한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니 어쩌랴. 과일은 열매솎기부터 잘해야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웅골부부는 5살 차이로 삼십여 년 전에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순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오만배, 아내는 오천배가 아닌 만배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상 또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매력에 끌려 조금씩 마음에 들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경상도가 고향인 부부는 평소 대화 속에서도 퉁명스럽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인정이 많아서 늘 곁에 사람들이 몰린다. 우리가 웅골부부와 더 가까워진 계기는 아마 2년 전쯤일 것이다.

수확 시기가 되면 복숭아 솎기 때보다 일손은 더 필요하다. 농촌에서는 제일 어려운 것이 품을 사는 일이다. 해서 복숭아 수확 시기를 조금 앞당겨 웅골로 도움을 주러 갔었다. 첫해에는 수확량이 많지 않아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되었다. 그런데 그해부터는 수확량이 많아지니 판매가 어려웠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복숭아 택배 작업을 마친 후, 나머지를 차에 싣고 농협공판장으로 떠났다. 그런데 잠시 후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다. 농협공판장에 갔더니 문이 굳게 닫혀 있더라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공판장이 이틀 동안 휴가라는 거다. 발송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지켜보는 우리 역시 암담하긴 마찬가지였다. 50여 상자나 되는 저 많은 복숭아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오후 서너 시가 훌쩍 지나고 있었다. 나는 속마음과는 달리 대뜸 충주 시내에 가서 복숭아를 팔아 보자고 큰소리를 쳤다. 호기를 부려봤으나 속마음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복숭아를 싣고 어디서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생각하던 끝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아파트로 정했다.

어찌어찌해서 아파트로 들어갔다. 관리 사무실에 복숭아 한 상자를 주며 부탁을 했다. 땀에 전 모습, 일복 차림의 안색이 측은해 보였던 것 같았다.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알아챈 경비아저씨는 선뜻 복숭아 품종과 가격을 크게 써서 상자에 붙이곤 경비실 앞에 진열하게 해 주었다. 순식간에 그 많은 복숭아가 다 팔렸다. 무더운 날씨에 고생도 했지만, 마음씨 고운 경비아저씨를 만난 것이 더 든든하고 감사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옹골부부와 우리는 늘 함께 의논하고 일을 해오고 있다.

옹골부부가 삼겹살과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점심 한 끼지만 부르길 잘했다. 부자가 된 듯한 미소가 내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까무잡잡한 얼굴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빙그레 웃는 웅골부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오늘만큼은 선남선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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