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좌절
  • 안승현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팀장
  • 승인 2019.06.1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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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팀장

 

미술이론 시간이면, 여지없이 앞자리 여학생들은 우산을 폈다. 실내에서 웬 우산? 정확히 형형색색의 양산을 방패 삼아 폈다. 교수님의 열강, 음성에 이어 퍼붓는 침을 막기 위해. 선배들한테 익히 들었던 터라 준비한 방패(?)다. 행여나 양산이 준비가 안 되면 앞줄은 비우고 할 줄 퇴각,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포성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이 날라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 대한 논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던 시기에, 미술사, 조형론 등 미술이론 수업보단 건물 철거냐 보존이냐를 놓고 대립이 커짐에 교수님께서 수업시간마다 돌아가는 상황에 우려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면서 발생한 상황이었다. 결국 교수님의 생각은 반영되지 않았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게 되었고, 지금 당시의 흔적과 역사를 활용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건물을 지하로 내리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학생이었고, 실현가능성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렇지만 일제 잔재냐? 유럽풍이고, 건축물 양식과 사용된 돌, 대한제국의 역사성에 대한 이야기가 학생신분이었지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대규모 사건이었다.

철거가 되고 20여 년이 지났다. 이후 상황은 다르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에 대한 존치 여부 및 활용방안에 이슈가 된다 하면 늘 관심의 촉을 세우고 지켜본다. 전공의 여부를 떠나 어떤 이야기들이 서로 대립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합의되어 가는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직간접적으로 현지를 찾고 수행하는 업무에 최대한 반영하며, 나름의 차별성을 갖고자 노력하였다.

캐나다 밴쿠버의 그린빌아일랜드의 조선소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를 시작으로 영국 런던의 트렌드세터들이 사랑하는 와핑프로젝트, 템즈강변의 테이드모던 등 많은 곳을 찾았다. 그러면서 청주만의 특성, 지역의 콘텐츠를 찾고, 차별화되어야 함을 누누이 이야기하고 공감되는 순간을 경험하며, 원칙적으로 무너질 수 없는 큰 벽을 감지하면서도 넘어보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저 버티는 벽이 아닌 야비하리만큼 간교한 벽이었던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늘 좌절됨을 경험하게 된다.

`알고만 있어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걸려온 전화, 교통영향평가에서 부득이 나무가 잘려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긴긴 의견의 대립 끝에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결정된 일방적 통보다. 일본 수종이어서, 이식비용이 커서, 나무의 가치가 없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렇다 치면 적산가옥은 모조리 없애야 하고, 여태 제조창의 흔적과 시간을 담고 지켜보았던 시간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이런저런 이유로 제조창의 역사를 모조리 없애버리면 결국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격양된 목소리를 냈고 타협도 해보았지만, 결국 애초 의도했던 대로 결정되고 결과는 참담했다. 다친 몸으로, 어깨도 빠진 상태에서 뭐하나 건져 보겠다고, 인테리어에 써 보겠다고,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매일 물을 주고 영양제를 주며 관리함에 집에서 관리한단 이야기를 확대하여 해석해서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알면서 참아야 하는 상황에 누구를 위한 일인지, 손 안 대고 코 푸는 상황에서 독려는 못할망정, 그나마 오래전 베어져 실려 나가는 나무 하나 건져 낸 것이 다인 듯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지키고 있지 못하는, 싸워야 이길 수 없는 조건에서 미친놈, 이상한 놈으로 몰리는 상황에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를 자문해 본다.

오늘 아침에 시작한 도로확장 공사에서, 연초제조창의 흔적과 시간을 오롯이 담고 있던 향나무 두 그루가 또 베어져 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경계를 넘음에 물끄러미 쳐다만 보다 가던 발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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