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지수(Adversity Score)
역경지수(Adversity Score)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6.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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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닥치면 사서 할 필요까지는 없다 여긴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타고난 팔자라며 주저앉기도 하고, 남을 이용해 상황을 모면하려 하기도 한다.

가장 좋은 결말은 위기를 기회 삼아 성공했다는 얘기다.

최근 미국 대학들이 입학시험에 역경점수(Adversity Score)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성적을 최우선하는 우리 교육과 비교하면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다.

한 매체에 따르면 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 시험을 관장하는 칼리지보드는 응시자의 가정형편과 주변환경 등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하는 이른바 `역경점수'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칼리지보드는 역경점수를 산정하기 위해 응시 학생의 가구 연소득, 거주하는 지역의 범죄율, 빈곤 수준, 재학 학교 내 빈곤층 비율 등 총 15개 항목을 입시에 반영한다. 역경점수는 SAT 응시 학생이 지원하는 대학에 제출되지만, 지원자는 점수를 볼 수 없다. 지난해 전국 50개 대학에 시범적으로 역경점수를 제공한 칼리지보드는 올해 150개 대학으로 늘린 뒤 2020년부터는 전면 확대할 방침이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노력만 하면 꿈도 이룰 수 있었고 원하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입시의 당락은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에서 나온다는 요즘,“학원을 다녀 본 적 없어요”“학교 공부만 충실히 했어요.”라는 수석합격자들의 입시 미담이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 대학들이 역경지수로 신입생을 선발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판에 우리는 수시, 정시 선발 비율을 두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늘 이 모양인데 정치인들이 학교 현장을 무시하고 주물럭거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역경지수를 도입해도 걱정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 10명 중 6명이 자신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으로 여기고 있으니 역경지수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올해 성인남녀 10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구직자의 60.9%가 스스로를 캥거루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이유 1위는`아직 소득이 없어서'(80.7%)라고 답했다. 이어 취업에 집중하기 위해서(27.9%), 지출이 커서(12.3%), 빚이 있어서(11.5%), 목돈 마련을 위해서(10.7%) 순이었다.

취업을 한 직장인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직장인 응답자의 40.9%가 경제적 또는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결혼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혼 응답자 15.1%가 캥거루족이라고 답해 10명 중 2명 꼴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음에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캥거루족이어야 이유는 많다. 구직자는 직장이 없어서, 직장인은 월급이 적어서, 기혼자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돈 많은 부모가 있으면 여유 있는 부모 덕을 보겠다며 캥거루족이기를 자처한다.

몇 해 전 스페인 여행을 갔다 온 지인이 말한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니 유독 한국 대학생이 많았다고. 대견한 마음에 물었단다. 왜 걷느냐고. 돌아온 답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였다고.

교육부가 역경지수를 도입한다고 발표할까 겁난다.

없는 고생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고, 힘든 일도 멋진 스토리로 포장해줄 역경지수 코디네이터가 등장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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