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
그녀의 이름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9.06.0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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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그가 그 말을 던졌을 때 그녀가 매섭게 눈을 흘겼다. 그녀에겐 매우 놀랍고 충격적인 말로 해석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에게 두려움이자 슬픔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녀의 이름 때문이었다. 그녀는 외국인 여성으로서 한국에 온 지는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언어도 서툴뿐더러 한국문화의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국이름을 꺼낸 것은 그녀를 당황케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준식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그 언젠가 종종 드나드는 식당에 업주인 박여사 며느리라고 소개를 받고부터였다. 그 후로 그녀는 준식을 볼 때마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 때가 지난 탓이었는지 식당이 한가로웠다. 박여사와 그녀 그리고 준식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준식은 식사를 하면서 그들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TV에서 이름에 관하여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준식은 그녀의 의향은 생각지 않고 무심코 그녀를 돕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이름을 운운했다.

박여사도 대수롭지 않게 한 술 더 떠 오히려 이름도 지어본 적이 있다고 준수의 말을 덩달아 웃으며 주고받고 있는데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고 날카롭게 준식의 얼굴을 빗겨가고 있었다. 별안간에 분위기는 식어가고 그녀는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듯 방향을 틀고 앉아 눈시울이 뜨거운지 눈을 들어 먼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식과 박여사에겐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가벼이 던진 한마디가 순식간에 주변을 암울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불찰도 있었지만 그보단 그녀에게 이름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꿔 놓고 그녀와 같은 입장이 되어 개명을 운운한다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어색한 거부반응은 왜 생겨났는지 알듯 말듯 분명하지가 않았다.

이름이 여러 의미를 지닐 수도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우선은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들의 고유문화 속에서 모국어로 지어진 이름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녀에게 이름은 부모님이 모국어로 지어주신 고향이자 조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이름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그런 그녀가 매서운 눈을 흘겼던 것은 그 이름을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한켠에 홀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가 쓸쓸해 보였다. 준식은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서 걸음이 무거웠다.

사람에게 이름은 무엇일까? 존재에 대한 정체성에 부여된 의미일까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처해 있는 환경에 의해 누군가에게는 고향이자 조국일 수도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이름이란 그들의 모국어로 지어지는 경우를 대개 알고 있다. 그러므로 개명을 운운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그리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또한 조심스러운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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