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민족의 큰 아픔 … 다시 비극 없어야”
“전쟁은 민족의 큰 아픔 … 다시 비극 없어야”
  • 조준영 기자
  • 승인 2019.06.04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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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국보훈의 달 특집 인터뷰 >
박성남 6·25 참전유공자회 청주시지회장
19살때 인민군에 강제 징집 … 가족과 생이별
형·누나 평양서 자유민주주의 수호활동 앞장
전세역전때 국군 입대 … 적 후방교란 등 활약
박성남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청주시지회장이 4일 국군 입대 당시 받은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태극기에는 무사 귀환을 소망하는 문구가 빼곡히 적혔다.
박성남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청주시지회장이 4일 국군 입대 당시 받은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태극기에는 무사 귀환을 소망하는 문구가 빼곡히 적혔다.

 

69년.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지내온 세월이다.

6·25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북괴 공산군이 자행한 불법 남침은 5000년 우리 역사에 짙은 생채기를 남겼다.

`동족상잔', `이산가족', `전쟁세대'. 한민족이 3년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눔으로써 생긴 비극이다.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처참한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으로 남았다.

박성남(87)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청주시지회장도 전쟁으로 말미암아 평생을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 인물이다.

그는 1932년 4월 9일 평안북도 삭주군 소풍면에서 태어났다. 상인 집안 4남1녀 중 셋째에게 주어진 건 기구(崎嶇)한 삶이었다.

박 회장 가족은 북을 뒤덮은 공산주의에 맞섰다. 평양 개벽신문사 기자였던 첫째 형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지하공작활동을 했다. 둘째 누나 역시 똑같은 길을 걸었다.

“북위 38도선을 기점으로 남·북이 자유·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던 시기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에 반기를 드니 괴뢰 정권엔 우리 가족이 얼마나 눈엣가시 같았겠어요.”

하루하루 철창 없는 감옥살이를 하던 때였다. 조용하던 고향 마을에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전차를 실은 기차가 오가고 인민군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전쟁 준비였다. 그는 첫 포성이 울린 지 3일 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강제 징집 명령. 인민군이 서울을 함락한 1950년 6월 28일. 학교에서 공부하던 19살 소년은 가족과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인민 군복을 입어야 했다.

그는 인민군 전선지구사령부 소속 위생병으로 참전했다. 명분 없는 전쟁에 힘을 보탠다는 사실이 못마땅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인민군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가족과 영영 생이별을 해야 했어요. 등교할 때 나눈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박 회장이 남침 행군 대열에 휩쓸려 전라남도 나주에 당도했을 무렵. 한줄기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 해 9월 15일 국제연합(UN)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까닭이다.

한순간에 고립된 인민군은 오합지졸이 됐다. 박 회장이 속한 부대 지휘관은 병사를 버리고 달아나기까지 했다.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같은 고향 출신 지인이 살고있는 충북 보은군 탄부면으로 향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에서야 인민 군복을 벗어 던질 수 있었어요. 이후에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요. 오직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요.”

이후 여러 도움으로 가호적을 받은 박 회장은 1951년 2월 10일 국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그는 육군본부 정보국 직할 특수부대인 제9172부대에 배치됐다. 유격대 성격을 지닌 부대로 `적 후방교란', `적 주력 전략 견제'임무를 수행했다. 북 출신이어서 현지 작전이 가능하고, 사상까지 뚜렷한 박 회장은 부대 적임자였다.

그는 전세가 매우 어려웠던 때 한반도 곳곳에서 공산주의 불순세력과 맞섰다. 동해안 특수 임무 작전부터 한라산 공비 토벌까지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길 5년2개월. 전쟁이 끝나고 군복을 벗을 때가 찾아왔다. 박 회장은 1957년 5월 10일 이등상사 신분으로 길고 긴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강제로 인민군에 끌려가야 했던 19살 소년이 10여년 만에 국군 참전 용사가 된 순간이다.

그는 말한다. 전쟁은 가족은 물론 청춘까지 앗아간 비극 그 자체라고.

“6·25 전쟁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에 큰 아픔을 남겼어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해요.”

전쟁이 끝난 지 66년. 박 회장에게 남은 건 자유민주주의와 군번 `8812071'뿐이다.

 

/조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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