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시간강사의 미래와 모순
대학과 시간강사의 미래와 모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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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어느새 까마득해진 대학시절 나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노엄 촘스키의 위대한 이름을 시간강사를 통해 들었다. 그다지 권위적이지 않고, 어딘지 불안하며, 당시 대학생이던 나와 별 차이 없이 싱싱한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 시간강사의 말 가운데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언어의 사회성'이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을 다시 사고하려는 구조주의를 탄생시킨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노엄 촘스키의 이름을 새파란 시간강사를 통해 들었던 경험과 그걸 40년이 다 되도록 기억하고 있는 나는 서로 신기하다.

보편문법으로 지칭되던 전통문법 외에는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탓인지, 랑그(Langue 言語)와 파롤(Parole 話言), 공시성과 통시성, 문장의 결합 관계와 계열 관계, 기호의 가치와 차이 등 핵심 요소들에 대한 설명은 신대륙을 경험하는 듯 충격이었다.

그 단어들의 어려운 속뜻을 <수요단상>을 통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표준어로 강요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던 `자장면'이 사람들의 언어습관에 따라 `짜장면'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는 이론적 바탕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언어는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이론은 그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구조주의 문법이 레비-스트로스, 라캉, 비트겐슈타인으로 이어지면서 언어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대 서양철학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구조주의를 통해 (언어학에서의)실천에 기초한 언어의 의미와 주체, 인간의 삶과 사고의 실체에 대한 진리에 이르는 철학적 혁명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혁명적 언어 철학 패러다임의 싱싱한 변화를 정규직인 `학과 교수'가 아니라 비정규직 신분인 `시간강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에피소드 또 한 가지.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쯤 지났을 때의 일인데, 그 때 기자 신분이었던 나는 취재를 이유로 졸업 후 발길을 거의 끊었던 모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착한 제자로서의 노릇을 못해오던 탓에 슬그머니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한 분의 은사와 마주치고 말았다.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잠시뿐. 나는 수업을 막 마치고 나오던 그분의 손에 들린 교재를 발견하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손에는 졸업한 지 20년도 훨씬 넘은 내가 배웠던 전공서적이 낡고 초라한 클래식(?)처럼 여전히 당당하게 들려 있었다. 명색이 기자랍시고 “요즘도 그 책으로 가르치시느냐?” 물었고, “이만한 책 없다.”는 궁색한 답변이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했다. 그는 정규직 교수였고, 지금은 정규직의 화려함을 유지한 채 정년을 했을 것이다.

우리 고장 사립대학에 얼마 전 군사학과가 생겼다. 그 배경에는 신분이 보장되는 군인으로서의 취업과 파쇼의 기운만이 넘쳐날 뿐, 정작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학습, 연구에 매진해야 할 대학 본연의 모습을 아직도 희망하고 있는 내가 오히려 한심스러운 인간이다.

대개의 기성(旣成)의 것들은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만의 두터운 장벽을 둘러치고 새로운 것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그들이 지닌 모든 능력을 집중한다. 대학을 비롯한 교육계가 특히 심한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시대 명제에 가장 먼저 가장 맹렬하게 거부감을 나타낸 것도 그들, 교육계의 기성품들이다.

8월부터 시행될 속칭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곡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시간강사를 죽음으로 내몬 발단을 그들의 지위보장과 처우개선을 통해 치유하자는 취지가, 엉뚱하게도 아예 발도 못 붙이는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의 내 소감은 한마디로 더 이상 이 땅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좋은 삶, 공정한 사회, 그리고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문명의 날은 올 수 있는가. 내일은 현충일. 그리고 반민특위가 처절하게 깨진 날. 이 땅의 모든 모순은 그날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우리는 여전히 그걸 고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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