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고집불통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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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미수(米壽)이신 어머니와 육십을 넘긴 여동생이 냉전중이다. 별일 같지도 않은데 중재를 해도 먹히질 않는다. 그러면서 서로 고집불통이라고 한다. 여동생은 어머니가 나이를 드시면서 차츰 고집이 더 세어지셨다고 하고, 어머니는 여동생이 나아기 들더니 황소고집이 되어간다고 속상해 하신다. 며칠 지나면 저절로 풀리겠지만 옆에서 보기 안타깝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서로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세어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고집이 세어지는 나이는 몇 살일까? 육십일까 팔십일까? 나도 고집이 세어졌는지도 궁금하다.

국어사전에는 고집(固執)을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 또 고집불통(固執不通)을 `조금도 융통성이 없이 자기주장만 계속 내세우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고집불통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에 의해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운 사람을 고집불통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욕구에 민감하고 때로는 쾌락에 휘둘리므로 이성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집불통들은 독선적인 자들, 무지한 자들, (사교성이 부족한)시골뜨기들이 되기 쉬운데 독선적인 자들이 고집불통이 되는 것은 쾌락과 고통 탓이다. 독선적인 자들은 스스로 생각을 바꾸도록 강요당하지 않으면 승자가 된 듯 우쭐대지만, 자신들의 결정이 민회에서 던진 표가 무효화되듯 부결되면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특권의식과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정치인들이다. 특히 기초든 광역이든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단체장들의 고집은 더 센 것 같다. 고집이 있어야 소신 있게 자신의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다른 조직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바꾸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고 괴로워하는 권위의식과 엘리트의식 때문일 것이다.

충청북도는 지난 화요일, 2019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 D-100일 행사를 서울의 광화문광장에서 치렀다. 지난번 대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도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얻지 못하는 행사를 엄청난 도비를 쏟아 부으며 이렇게 끈질기게 추진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도지사가 바뀌면 지속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행사를 도와 시군의 행정력을 동원하면서까지 치루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청주시의 행정도 마찬가지다. 도시공원개발을 두고 청주시장은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려하지 않는다. 역사유적을 파헤치는 테크노폴리스 개발문제에서도 내가 전문가라고 주장하며 시민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무시한다. 청주시장이 도시공원 개발과 테크노폴리스 개발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예산이 없다는 것과 문화재 분야는 자신이 전문가라는 것이다. 그 주장의 근거는 5급 공무원을 시작할 때 문화재청에서 2~3년 근무했다는 것인데, 참으로 전문가라는 명칭을 모욕하는 오만이다.

단체장들이 자신의 정책을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은 나만이 최고라는 엘리트의식과 바른 비판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권위주의적인 생각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일 때 쾌감을 느끼고, 남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소신이 되려면 남의 말에 귀를 닫는 고집불통과 남의 말에 휘둘리는 줏대 없음 사이의 중용을 택해야할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귀를 열어 시민의 소리를 먼저 듣고,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에 사로잡히면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그러면서 권력과 권위를 이용해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이것이 고집불통이다. 그들이 이렇게 고집불통이 된 것은 60대 후반과 70을 넘긴 나이 탓일까, 엘리트의식과 권위의식 때문일까, 두 가지가 모두 원인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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