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송별사
오월 송별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5.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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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넝쿨장미가 시들어가듯 오월도 저물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작별할 지난 오월의 날들을 반추하며 서러운 송별사를 띄웁니다.

돌아보니 2019년 대한민국의 5월은 사건·사고와 갈등과 분열과 고통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달이었습니다.

대장부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입니다.

이별이 슬퍼서도 오월을 특별히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눈물이 흔해진 탓이기도 하지만 오월을 오월답게 보내지 못한 회한이 너무 크고 깊어서입니다.

날씨까지 심술을 부린 오월이었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헌사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한여름에나 볼 수 있는 폭염주의보와 오존주의보가 여러 날 발령되었고 미세먼지까지 극성을 부렸거든요.

때 이른 더위와 오존과 미세먼지가 힘겹게 사는 민초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날씨뿐만 아닙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있어 오월은 가정의 달이자 사랑의 달인 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오월에 존속살인 같은 끔찍한 패륜 범죄가 연이어 발생했고 일가족이 집단자살 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들이 다발해 사람들을 경악게 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심화로 효도란 말이 박물관에 박제된 지 오래 이고, 쉽게 이혼하고 가정해체가 심화되니 그럴 수밖에요.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진주 아파트 화재와 칼부림사건이 이를 웅변합니다.

제천 가스폭발사건과 구미 공장화재사건 같은 대형화재도 많았습니다.

촛불을 등에 업고 집권한 정권이라서 화재참사가 많이 난다는 비아냥거림이 회자할 정도이니 화재예방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오월은 예수님을 낳고 섬긴 성모 마리아를 경배하는 성모성월이기도 하고,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8일)이 있는 축복의 달입니다.

성모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퍼지는 거룩한 달이죠.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혼탁하고 어지러워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오월은 5.18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난 달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시린 달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총검을 든 공권력에 의해 살상당한 분들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없기를 다짐하는 달이자, 사람 사는 세상을 부르짖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과 철학을 기리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보수와 진보, 좌와 우, 영남과 호남이라는 낡은 진영논리에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진영논리를 부추겨 진영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횡횡하고 있습니다.

정치세력들이 지난 과오들을 서로 인정하고 용서하고 화해해서 상생과 공존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네가 죽나 내가 죽나 어디 한 번 해보자'며 이전투구를 벌이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

경제와 안보가 몹시 위중한데 국회는 개점휴업상태인지 오래 이고, 여당으로부터 패스하기 당한 제1야당은 거리로 나가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고, 집권여당은 그런 야당더러 무작정 국회로 돌아오라고만 하니 꼬인 실타래를 풀기는커녕 더욱 꼬여만 갑니다.

대화와 타협이 정치의 본연의 모습인데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시정잡배처럼 고소고발이나 하고 있으니 기가 찹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청년들이 넘쳐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자랑스러운 대한국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방탄소년단이 그렇고, 오월의 청량제가 된 봉준호 감독의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이 이를 입증합니다.

저기 오월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합니다.

하여 내년에 올 오월은 민초들이 활짝 웃는 행복한 오월이기를 소망하면서 잘 가시라 정중히 배웅합니다.

오월이여 안녕히.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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