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전상서
아버님 전상서
  •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 승인 2019.05.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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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전상서'에서 전(前)은`앞'의 높임말이며 상서(上書)는 `웃어른에게 올리는 글'을 이르는 말로, 역사적으로는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일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아버님 전상서'는 `아버님께 올리는 글'정도로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상서'란 문구를 처음 알았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군대 간 삼촌께서 `부모님 전상서'라는 편지를 보내와 그 편지를 할머님께 읽어 드렸던 때로 기억됩니다. 그 뒤로 너무 형식적이라 느꼈던 `전상서'라는 문구를 가슴 뭉클하게 눈으로 읽었던 기회가 있었습니다.

2019 청주시립미술관 로컬 프로젝트로 기획된 최익규 개인전(2019.5.9.~7.28)에서 만난 `아버님 전상서'라는 제목의 작품은 두터운 천연 광목에 하얀 실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가며 철저하게 노동의 시간으로 채운, 개당 2미터가 넘는 대형캔버스 40여 개로 제작된 설치작품입니다.

맨 먼저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 크기와 설치규모에 압도당합니다. 전시공간은 자체의 높이(천고)가 10M가 넘는 특별한 공간인데, 원래 방송국의 메인 공개홀로 사용됐다가 현재 미술관의 전시장으로 리모델링된 공간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높이의 전시장 벽면에 40여 개의 판넬 작품들이 견고하게 한데 뭉쳐 거대한 또 하나의 벽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을 통해 만들어지는 필연 또는 우연의 형상 속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존재 이유인`가족'과 그를 둘러싼 `인연'들과의 연관성을 담담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바느질 드로잉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무슨 이유에선지 뚝 끊겨 보잘 것 없이 나약해진 실선에서는 아쉬움과 애틋함이 묻어나다가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는 형상에서, 흠칫 나와 나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그 속에서 아버지의 삶, 눈물과 역경, 환희와 행복이 어우러진 장편 드라마를 가슴 먹먹하게 읽어봅니다.

특히 작가는 자신과 아버지와의 생물학적 관계로 형성된 오늘날 자신의 모습이, 결국 지금의 예술가적 삶과도 연결된다는 가장 솔직하고 단순한 진실에 대해, 스스로의 자화상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예술 활동을 멋지게 포장된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닌, 그저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모습과 결과에 고마움을 담아 담담하게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부모님께 `전상서'쓰고 있었습니다. 하루의 삶이 생명의 연장선 위에 습관처럼 반복되듯, 지난날 또는 현재의 시간을 정성스레 반복해 꿰매는 작가의 바느질 행위는, 자신의 삶을 고찰하고,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인연에 대해 성찰하는 일종의 종교적 수양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오프닝 인사말에 앞서 최 작가님이 오늘의 주인공인 부모님을 직접 소개하자 자그마한 노구를 일으켜 공손히 인사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는 듯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와 함께 축하객들은 환하게 웃으며 두 눈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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