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무와 인간지한(有我無蛙 人間之恨)
유아무와 인간지한(有我無蛙 人間之恨)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19.05.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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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오월의 한낮. 파라솔 그늘아래 잠시 졸고 있다. 어디선가 꾀꼬리 한 쌍이 울어대며 휙 날아간다.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고구려 2대 왕인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에도 나오는 황조(黃鳥)가 바로 꾀꼬리다.

꾀꼬리는 우리나라와 동남아 일대에서 서식한다. 동남아에서는 연중 머무는 텃새지만, 우리나라에는 5월경 찾아와 번식하고 늦가을에 떠나는 여름철새다. 울음소리도 청아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데 조선 후기의 물명고(物名攷)에는 꾀꼬리 소리가 32가지나 된다고 기록됐을 정도다. 목소리가 일품인 새이지만 노란 깃털이 더 아름다운 새가 꾀꼬리다.

봄이면 높은 나뭇가지 끝에 둥지를 튼다. 천적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가끔은 까치란 놈이 텃세를 부린다. 어느 정도 자란 새끼를 해쳐 먹이 경쟁자를 제거하는데 텃세치고는 잔혹한 텃세를 부리는 영악한 까치다. 꾀꼬리는 둥지에 3~4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새끼들은 주로 곤충의 애벌레와 성충, 송충이 등을 즐겨 먹어 곤충의 수를 조절하는 중간소비자 역할을 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가을철에는 곤충과 거미류 이외에도 버찌·산딸기·머루 등 열매들을 두루 먹는 잡식성이다.

고려시대 임금이 민정시찰을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 어느 산골에서 민가를 발견하게 된다. 대문에 `유아무와 인간지한(有我無蛙 人間之恨)'이란 글귀가 붙은 집이었다. 임금이 주인에 그 뜻이 무엇인가 물었다. 그 말에 주인은 이야기한다.

“깊은 산골에 꾀꼬리와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노래 시합을 청했다. 가소로웠지만 꾀꼬리는 승낙했다. 시합 날을 잡고 심판관은 두루미로 정했다. 꾀꼬리는 부지런히 노래연습을 했다. 그런데 까마귀는 노래연습은 하지 않고 논두렁에서 개구리만 잡고 있었다. 까마귀는 심판관이 개구리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다. 시합 전날 밤 까마귀는 심판관을 찾아가 온종일 잡은 개구리를 상납했다. 드디어 시험 날 노래 경연이 시작됐고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불렀다. 모두 다 꾀꼬리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으나 심판관은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관객들은 어이가 없는 판정에 씁쓸해했다”

`有我無蛙 人間之恨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이라)'자신의 실력만 믿어 뇌물(개구리)을 쓴 이들에 밀려 과거에 낙방한 자신의 처지가 꾀꼬리와 같은 처지라는 이규보의 재치 있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좁은 취업문에 주눅이 든 젊은이들. 가끔 터져 나오는 취업비리에 의욕 상실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지만 꾀꼬리와 까마귀의 노래시합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개구리 잡는 시합이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까마귀와 꾀꼬리의 타고난 능력이 다른데 어찌 한가지만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일까?

아이들도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른데 일률적인 학교 교육이 바르게 가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다양성을 살리는 교육,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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