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매듭
  • 박희남 수필가
  • 승인 2019.05.2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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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희남 수필가
박희남 수필가

 

나는 바늘에 실을 꿰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어느새 노안이 와서 돋보기 안 가지고 나온 걸 자책하며 눈살을 찌푸려 가면서 바늘에 실을 꿰었다.

바늘이 커서 쉬운 일이었음에도 오십대 중반을 넘어서는 나에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실에 침을 바르고 배배 꽈서 온 정신을 집중시켜야 빠른 시간에 성공할 수 있다.

바느질하는 사람 열 명에 실을 꿰어 주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니, 실의 길이는 점점 길어져 갔고 여기저기서 실이 길어서 불편하다고 투정과 아우성이 난무하다.

그런데 급하게 실을 꿰다 보니 실이 엉키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실마리를 찾으려 애를 써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잘라버리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고 가위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머리를 스친다.

`매듭은 자르는 게 아니고 푸는 거라는'그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냥 잘라버리는 건 쉽기는 하겠지만, 다시는 쓸 수 없이 버려야 한다.

하지만 좀 어렵고 힘들더라도 시간과 공을 들여서 풀면 다시 쓸 수가 있다.

살아가다 보면 인간관계도 뜻하지 않게 실타래처럼 엉켜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처음엔 풀어보려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엉킨 실타래 잘라버리듯 뚝 잘라 버리고 싶어진다.

다시 안 보면 그만이고 편한 걸 왜 고민하고 신경을 써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한발 비켜서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에, 그에게 있어 나는 잘라버리고 싶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보자기 끈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잘라버리면 그 보자기는 다시 못쓰게 되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잠시 엉켰다고 잘라버리면 어떻게 될까? 시간이 걸리고 심신이 힘들어도 사람과의 인연은 그 모든 것들보다 소중하기에 잘 풀어서 오래도록 좋은 인연으로 살아가야 하리라.

이런저런 오락거리와 좁아진 지구촌, 풍성한 먹거리와 넘쳐나는 문화가 있지만, 사람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고, 위로받고,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지어졌기에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소중하고 귀하다.

음성에서 품바축제가 열렸다. 음성문인협회에서는 해마다 품바의상체험 부스를 운영하기에 회원들이 모여서 품바의상을 만든다.

각자 집에서 헌 옷을 가지고 와서는 아무렇게나 인 것처럼 품바의상을 짓고 있지만, 나름 고민하면서 질서 있게, 혹은 진짜 품바 옷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열심히 바느질을 한다.

이 중 몇몇은 이십여 년을 함께 하면서 크고 작은 오해와 감정들이 쌓여서 매듭 자르듯 잘라내고 싶었던 인연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난 돌 같았던 우리도 세월에 깎이고 다듬어져서 지금은 둥글게 두루뭉술 넘기며 잘들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그때 엉킨 매듭을 잘 풀지 않고 가위로 자르듯 잘라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의 저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없었을 게다.

내 생애 남은 날도 항상 매듭을 풀 듯 조심하며 가만가만 세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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