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위에 우뚝 선 조선 선비의 기품 암서재
바위 위에 우뚝 선 조선 선비의 기품 암서재
  • 김형래 강동대교수
  • 승인 2019.05.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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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선-땅과 사람들
김형래  강동대교수
김형래 강동대교수

 

성리학을 수용한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서 산수(山水)는 단순한 산과 물이 아니라 자연의 도(道)의 본질이 내재된 총체적 자연의 상징이었고, 지형적·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신세계인 산수 속에서 자연의 이치와 인생의 참된 가치를 체득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풍광 속에 정자 짓기를 선호했고, 그 곳에서 자연경관을 관조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위해 사색했다.

괴산 화양동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도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山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나라 대표 계곡중 하나이다.

화양동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1666년 8월 계당(溪堂)을 짓고 머물기 시작한 후 1688년 4월 떠날 때까지 23년간 왕래하며 휴식하거나 저술에 몰두했던 곳이다. 특히 우암은 화양동에 머무르면서 중국 송나라 때 주자(朱子)가 만년을 지냈던 복건성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모방하려 하였고, 그를 흠모하여 조영 속에서 상징화 하였다. 우암 사후 수제자인 수암 권상하(1641~1721년)는 구곡을 설정하였고, 이후 단암 민진원(1664~1736년)이 구곡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고 전한다.

`암서재(巖棲齋)'는 우암의 유적중에서도 실제의 삶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공간이다. 암서재는 화양동의 중심인 금사담(金沙潭)위 넓은 암반 위에 위치한다. 대개의 정자가 풍광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는 것과 달리 암서재는 풍광 속에 들어앉아 있다. 암서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넓지도 좁지도 않은 화양동 계곡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계곡을 따라 멀고 가까운 산들이 건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암서재 앞을 흐르는 맑은 계류와 군데군데 보이는 푸른 소나무, 희고 넓은 암반들이 계곡의 운치를 더한다. 암서재 맞은편으로는 화양서원과 만동묘(萬東廟)가 위치하고 있으며, 부근으로는 불변의 의리(義理)를 상징하는 비례부동(非禮不動)과 같은 마애각석(磨崖刻石)이 있다. 이를 통해 암서재와 화양동 계곡은 송시열의 학문이 집대성되는 기반이 되었던 공간이자 우암의 도학자적 삶이 투영된 장소로 상징화 되었다.

현재의 암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된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우암이 언제 이 정사를 건립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우암이 지은 암서재 시(詩)를 통해 우암이 화양동에 들어 온지 3년이 지난 1669년경에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서재는 화양동에 머물면서 우암이 참으로 아끼던 정자이자 서재였다. 우암은 이곳에 기거하며 학문에 매진하고 저술에 몰두했다. 그러나 1689년 우암이 사사(賜死)된 이후 암서재는 점점 퇴락하여 무너진 채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이를 안타깝게 여긴 청주목사 김진옥(鎭玉)이 1715년(숙종 41) 정사를 중건하였다. 김진옥은 1721년(경종 1)에 제천 황강에 있던 수암 권상하에게 부탁하여 `암서재(巖棲齋)'라는 편액의 글씨와 기문을 받아 새로 중건한 우암의 정사에 걸었다. 암서재 현판이 이때 와서 김진옥에 의하여 걸리게 됨으로서 암서재라는 이름이 우암이 작고한 이후의 이름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암의 시(詩)에서도 암서재는 다만 `정사(精舍)'라 했고, 권상하가 지은 「암서재 중수기」에서도 그것을 `소재(小齋)'라 칭했다.

이후 암서재는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70년에 보수한 것인데, 보수하기 전에는 암서재 앞에 협문과 낮은 담장이 있었다. 보수를 하면서 담장 대신에 철책을 둘렀다.

`바위 위에 지어 사는 집'이라는 뜻의 `암서재(巖棲齋)'. 성리학자로서의 우암 송시열의 더 깊고 넓은 자기수양과 넓은 덕목을 쌓아 군자가 되고 세상을 평천하하기 위해 힘쓴 자취를 찾아보는 일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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