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선에 머무는 `균형발전'
구두선에 머무는 `균형발전'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5.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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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옥천군의회가 엊그제 `고향사랑기부금제(고향세법)' 시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도시에 사는 주민이 자신의 고향 등 지자체를 특정해 기부하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낮은 재정 자립도에 허덕이는 지방의 군소 지자체들을 배려한 고육책이다.

이 제도는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면서 국내에 선보였으나 이듬해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일본은 2008년부터 이 제도를 운용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7년의 경우 조성된 총 기부금이 3653억엔(약 3조7000억원)에 달해 농촌 지자체들의 재정에 도움을 줬다.

국내에서도 제도의 필요성이 인정돼 지난 3년간 14개의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고 모두 계류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이 제도를 공약하고 취임 후에는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으나 정부 역시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표가 필요한 선거철만 되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외치며 지방 살리기 공약을 내걸지만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되는 일이 이제는 관행이 됐다. 고향세법 뿐만이 아니다. 세종시 국회분원 설치도 정치권이 지방을 우롱해온 대표적 식언으로 꼽힌다. 국회분원은 지난 총선에서 여·야당 모두 공약으로 삼았고,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후보들이 호언했던 대표 공약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국회는 지난 2017년 `세종시 국회분원 설치 타당성 조사'를 한국행정연구원에 의뢰해 긍정적 결과를 얻고도 실행을 외면하고 있다. 연구보고서는 세종시에 소재한 부처를 관장하는 국회 상임위와 예결특위만 옮겨와도 지방에 2만3000여명의 인구가 늘고 총생산도 785억원 증가해 적지않은 균형발전 효과를 낳는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용역결과는 아직까지 서류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도 행동보다 말이 앞서기는 마찬가지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취임하며 수도권 122개 공공기관 이전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장담했으나 지금까지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이미 당 대표가 추진을 공약한 이 사안을 민주당이 내년 총선 공약으로 검토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선거용으로 재탕 삼탕 우려먹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지방을 배려한 균형발전 시책들이 헛바퀴를 도는 것은 수도권의 반발 탓도 크다. 고향세법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일부 수도권 지자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 인천시당은 공식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기부자가 공제받는 세액의 90% 이상을 중앙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의 세수 감소는 미미한데도 말이다. 국회분원 설치로 지방에 늘어날 인구와 생산유발 효과는 그만큼 수도권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지방에 뺏긴다는 수도권의 피해의식도 추진에 장애가 되고 있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도 서울을 황폐화한다는 반론에 부닥치고 있다.

한국은 수도와 위성도시들이 국가의 자원과 기회의 80%를 독점하고도 계속 세를 불려가는 유일한 나라이다. 극심한 영양실조에 인구문제까지 겹쳐 이제 지방의 소멸은 시간문제가 됐다. 2400년쯤이면 부산의 붕괴를 끝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지자체들이 모두 소멸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판이다. 모세혈관이 모두 막혀버리면 수도권의 수명도 시한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국회가 수도권의 저항에 전전긍긍하며 균형발전 시책들을 미룰 계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출향인들이라도 고향을 돕게 해달라는 옥천군의회의 건의문은 `고립무원'에 빠진 지방의 절규나 다름없다. 정부와 국회가 지방의 처절한 외침에 귀를 더 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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