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민원창구
손글씨 민원창구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9.05.2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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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얼마 전 보도를 통해 한 지자체가 손글씨 민원창구를 운영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 지역자치단체는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이고, 노령인 주민들은 인터넷 게시판 형식의 소통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의 손글씨 민원 창구를 부활했다고 밝혔다. 이 민원창구의 이름은 `군민 신문고'인데, 군민이 직접 손글씨로 작성해 신문고함에 투입하면 접수된 민원에 대해 당일 담당 부서를 지정하고, 답변 내용을 민원인에게 우편으로 발송하여 알리게 된다고 한다.

한 70대 작가는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장편소설도 산문도 모두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써 왔다고 회고했다. 그에게 연필은 무기이자 악기이며 밥벌이의 연장(鍊匠)이고, 그가 연필로 쓴 손글씨는 그의 총체가 담긴 결과물이다. 그가 펴낸 이번 신작은 심지어 `연필로 쓰기'였다. 창작의 도구로 손글씨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독일 교육 보육 노조(Verbandes Bildung und Erziehung)'에서 실시한 표집조사인 `STEP 2019(Studie uber die Entwicklung, Probleme und Interventionen zum Thema Handschreiben)'는 독일 전역 2,000여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이다. 이 조사는 학생들의 손글씨에 대한 평가, 학생들이 손 글씨에서 겪는 어려움, 어려움의 원인, 해결방안의 4개 영역으로 질문 문항이 구성됐다. 결과는 이렇다.

설문에 응한 초등교원 중 학생의 손글씨를 알아볼 수 있다고 대답한 인원은 3분의 1(37%)에 불과했고, 중등교원은 4%만이 학생의 손 글씨에 만족하며 43%의 중등교원은 학생이 손글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의 어려움은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더 심했으며, 읽을 수 없는 글씨를 쓰거나, 너무 느리게 글을 씀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가장 많았다. 이 어려움에 대해 대부분 교사는 일상적인 손 글씨 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가장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 원인은 의사소통의 디지털화와 미디어 발달이 가장 크고, 교육과정의 쓰기 시수 부족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렇다면 이런 손글씨 쓰기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교사가 섬세한 소근육 움직임 활동을 해결방안으로 꼽았다. 만들기, 그리기, 요리하기와 같은 활동이 이에 해당하는데, 손은 물론이고 신체의 다양한 소근육의 발달을 돕고, 손과 눈의 협응, 뇌와 근육의 협응 등 조화로운 신체 반응을 만드는데 이러한 활동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응답 교원 중 4분의 3이 가정 또는 학교에서 손으로 글을 쓰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나 학습 도구가 개발된다면 학생들의 손글씨가 개선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이 모든 방안 역시 가정과 학교에서 부모와 선생님이 손글씨를 쓰는 어른의 모범을 보일 때 가능하다는 것도 덧붙였다.

아들아이가 육군훈련소에 있을 때, 손으로 쓴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 통은 편지지도 아닌 수첩 종이를 찢어 깨알 같이 흘려 쓴 글씨였다. 얼마나 바삐 썼는지 안 그래도 악필인 글씨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아들의 소식과 그리움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반듯한 글씨는 정갈한 마음이, 흘려 쓴 글씨는 바쁜 중이지만 전해야 했던 그 분주한 마음이, 삐뚤빼뚤한 글씨는 그 글씨대로 마음과 상황을 전하는 또 다른 형태의 글이 된다. 손으로 전해지는 무수한 이야기, 손글씨로 감사와 평안을 전하는 마음 인사를 해보면 어떨까? 붙임쪽지여도 좋고, 근사한 편지지여도 좋고, 또 작은 메모지이면 어떠랴? 손으로 전한 그 마음이 중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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