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바람
시절 바람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5.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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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가슴에 커다란 붉은 브로치를 단 듯 봄날을 장식했던 명자나무였다. 봄이 지나 꽃이 지고 나니 잎이 어찌나 무성해 졌는지 다른 나무들에 한 치의 곁도 내주지 않는다. 강인한 생명력이다. 가시는 또 얼마나 단단한지 줄기를 잘라내고 쳐내도 금세 다시 자신의 자리인 냥 차지하고 서 있다.

봄이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우리 집을 찾은 언니는 붉은 꽃들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시골 농막에 심고 싶다며 명자나무를 떼어 달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점점 커져만 가는 나무를 어쩌나 했는데 잘됐다 싶어 조금 떨어져 나온 귀퉁이를 캘 요량으로 삽을 명자나무 뿌리를 향해 힘껏 밀어 넣었다. 너무 얕잡아본 탓이다. 뿌리 또한 위로 올라온 나무의 몸뚱이만큼이나 단단하리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결국, 뿌리 한쪽도 떼어내지 못하고 헤집어 놓은 흙들을 도로 쌓아 놓았다. 생각해 보니 해마나 나무줄기를 꽤 여러 번 잘라 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 얼마나 뿌리가 단단해졌을까. 쳐낸 것은 생각지도 않고 보이는 것만 생각했다. 언제쯤이면 보이지 않는 것도 가늠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닐 수 있을까. 그동안 명자나무는 자신의 가지가 잘려나갈 때마다 깊고 어두운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 내려갔을 것이다. 무성하게 키워내는 잎들은 나무가 보내는 생명의 신호였다.

요즘처럼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히는 순간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보는 것만큼이나 사람 사이의 행동양식 또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것이 진화인지 진보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의 기억 속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직도 39년 전 5월의 그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그만 잊으라고 돌아오지 못한다고 덮으라고 했다. 밝힐 수도, 밝히려고도 하지 않은 채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5월의 나날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그들에게도 5월의 상처가 아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 그뿐이었을까. 누군가는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집 앞에서 더 모진 소리를 해댔다.

5월, 세상은 온통 푸름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푸름 속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푸른 잎들이 밖으로 손을 뻗는다는 것은 어두운 땅속 깊은 곳으로 자신의 아픔을 키웠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고 잘라내도 뿌리는 더 강해지고 깊이 들어가는 나무처럼 그들의 아픔이 얼마나 깊고 큰지 우리는 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따듯한 마음마저 변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절마다 바람은 거세게 불어오곤 했다.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굳건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온정 때문이었다. 매섭게 추운 바람은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지만, 따뜻한 바람은 두꺼운 옷을 벗어 던지고 가슴을 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들에게 깊은 상처는 옹이가 되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다. 부디 지금의 이 바람이 5월의 아픔을 간직한 그분들에게 따듯한 바람이 되어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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