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 사람들 사이에 있는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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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그녀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 적지 않은 세월동안 막역한 사이로 지내 왔다고 여겼는데, 나는 그 소식을 SNS와 신문을 통해 알았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는데, 그 단순한 내 행동이 상대방을 크게 당황시키고 말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드문드문 흩어진 다도해의 한 점 섬과 같아서 혼자의 마음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그녀는 크게 고심했던 것 같다. 지독한 저출산의 나라에서 결혼이라는 숭고한 통과의례를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온 백성이 경하할 일이겠으나, 그 소식을 아무런 부담 없이 알릴 수 있는 대상을 손꼽기는 쉽지 않은 일이겠다. 자랑스러운 혼례, 즉 가정의 이룸이 누구에게나 공공연하게 축하를 받을 일임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뒤늦게나마 나는 충분히 짐작한다. 아주 가끔 거리이거나 식당에서 스치듯 조우하며 묵은 반가움을 표시하는 상대방에게 자신과 친분의 정도를 헤아리는 일은 혼자의 판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10년이 지났음에도 떨쳐버릴 수 없는 죄책감과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우리 시대의 모진 숙제로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노무현의 이름과 같다.

그 때, 우리는 어찌하여 그의 진심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는가. 어찌하여 나는 저잣거리의 술안주처럼 함부로 씹어대는 험하고 거친 입들을 설득하고 차단하면서 무찌르지 못했는가.

10년이 넘은 지금껏 미안함으로 짙은 상처가 남은 육신과 영혼의 쓸쓸함으로 노무현, 그의 그리운 이름을 되새기는 오월. 사람들 사이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위태롭다.

나는 <부부의 날>로 정해진 오늘, 이 글을 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내일 독자들이 오늘의 시점에서 읽을 것이다. 나는 내일의 오늘을, 지금의 오늘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 셈인데 그 간극에는 결국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 사이의 관계만큼 머나먼 거리가 있다.

오월에 드디어 결혼을 하는 그녀에게 <부부>라는 새로운 관계와 <가정>, 그리고 <가족>이라는 새로운 영역과 역할에 대해 한마디 할 수도 있는 부부의 날이긴 한데, 거기에 <노무현>의 이름이 자꾸만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사람이 사람과 만날 때, 그 관계의 설정이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헤쳐나가려 했던 노무현으로 치환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지울 수도, 지워서도 안 되는 이름이다.

노무현의 이름을 지우고 싶어 안간힘을 쓰며 함부로 나대는 무리를 용서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결혼을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는 용서하거나 용서받아야 할 일을 애당초 만들지 않아야 하는 절대적 진심을 전제로 한다.

그녀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 살다 보면 심드렁하게 여겨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뜻과는 달리 분노할 일도 생길 것이고, 서럽고 외로운 일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 짝이 언젠가, 어느 순간인가 내 가슴을 설레게 했으며 내 심장을 울렁거리게 해 준 기쁨이었다는 걸, 10년이나 지난 지금도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노무현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길 빈다.

“한 대도 안 맞는 싸움은 없다. 4대 맞고 6대 때릴 수 있으면 싸운다. 시도하고 도전하면 실패와 성공의 확률이 50대 50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100% 실패다. 왜 100% 실패의 길을 가려고 하는가.” 한·미 FTA를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을 결혼을 앞둔 그녀에게 덕담이랍시고 건넨다.

지아비와 지어미가 되어도 싸울 일은 제대로 싸워야 한다. 다만 그게 사랑싸움이어야 하고 더 많이 베풀면서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슬기가 서로에게 필요하다.

그녀로부터 늦게나마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그녀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게 했을 만큼 위태로운 내 인간적 관계망에서 사람을 다시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의 섬이 사무치는 오월. 그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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