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심보미 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 승인 2019.05.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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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심보미 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심보미 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언제쯤 면접 연락이 올까, 언제 최종 합격증 받아볼 수 있을까 고대하며 항상 마음속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되새겼다. 마침내 최종 합격을 하고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설렘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쁨과 설렘도 잠시,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고용의 불안감과 높은 집세로 인해 아쉬움만 남긴 채 끝이 났다. 그렇게 난 `공시생'이라는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로 뛰어들었다. 다행히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이라는 시간 후 공무원 사회에 새롭게 발을 들일 수 있게 됐다.

공무원으로서 나의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 이미 경험해본 직장생활이기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 가지각색의 민원으로 인해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첫 직장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힘들게 떠올리던 창의적 아이디어와 창작의 고통에 비할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도 못 했던 세무과에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에 어리둥절한 채로 첫 출근을 하게 됐고,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체납징수팀에 처음 발을 내디뎌 내가 마주한 것은 낯선 세목들과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였다.

정신없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익숙하지 않은 세목들과 세금에 대한 다양한 질문의 늪 속에서 힘들었던 취업 준비생 시절을 생각하며 `이것도 곧 익숙해지겠지,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고 되뇌곤 했다. 그러한 되새김이 무색하게도, 그것은 지나가지 않았다.

첫 출근 때 느꼈던 낯선 구청의 공기가 따뜻해져 가고, 어색했던 미소가 자연스러운 미소로 바뀔 무렵, 체납으로 인한 부동산 압류에 화가 난 민원인의 전화를 받았다. 상기된 민원인을 안정시키는 것은 업무 경험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신규 공무원이어서 선배 공무원들처럼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했고, 우물쭈물하다 상대방에게 꼬투리를 잡히기 일쑤였다.

업무를 시작한 후 처음 받아본 화가 난 민원인의 전화는 그 어느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웠고, 몇 날 며칠 동안 전화벨이 울리기만 하면 혹시 그 민원인일까 가슴이 뛰었다.

임용이 되고 5개월이 지났지만 조금이라도 언성을 높이는 민원인을 응대할 때면, 심장이 뛰고 목소리가 떨리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선배들의 따뜻한 다독임으로 인해 기분이 풀어지고 약간이나마 얼굴에 미소를 띠어본다.

한 번은 울어야 진정한 공무원이 된다는 어느 선배 공무원의 진담 섞인 우스갯소리가 마음에 와 닿으며 과연 한 번으로 진정한 공무원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는 고충 민원도 커피 한 잔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베테랑 공무원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끝이 없는 체납액 징수 업무를 하며 이 고난을 지내는 중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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