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이다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1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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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지난 월요일 충북도의회 교육위원회가 주최하는 `충북의 인재 육성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고교무상급식 분담금 합의조건으로 내세운 충북도의 명문고 설립 주장과 충북교육청의 공교육 활성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충북도의회가 중재에 나섰고, 그동안의 논쟁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갖게 된 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두 기관을 대표하여 부지사와 부교육감이 각 기관의 입장을 발표했고, 3개 기관이 추천한 토론자가 토론을 벌이는 형식이었다. 나는 충북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토론자로 참석했다.

나는 토론을 시작하며 세 기관의 자세를 비판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재자로 자처한 충북도의회가 충북도에 편향된 자세로 일관하며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 내용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부유층이 전유하고 있는 자사고나 특목고를 폐지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민주당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충북도의회가 민주당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하여 자사고 설립을 주장하는 도지사의 정책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내는 그렇지 않더라도 멀리 있는 대통령보다 가까이 있는 도지사가 더 어려워 그런 것이냐며 충북도의회가 확실한 입장을 정리하여 중재에 나서는 것이 옳았을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토론자들의 토론이 끝나고 방청객 토론시간에 한 충북도의원이 일어섰다. 그는 나의 발언을 지적하며 공개석상에서 도의회를 비난했다고 흥분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공교육이 무너졌다며 사교육으로 가야한다'는 투의 발언을 쏟아냈다. 자신이 속한 정당의 정부 정책이 어떻건 자기의 소신을 피력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얘기라 치더라도 충북도의회를 토론회장에서 비판했다고 눈을 부라리는 것은 도의회와 도의원의 존재의미를 망각한 태도로 자격미달이다. 시민단체의 대표로 도교육청의 추천을 받은 토론자의 비판발언조차도 수용하지 못하고 그렇게 발끈하는 것을 보면 주민을 대할 그의 태도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충북도의회와 의원들의 행동은 찬사만 받아야 하는 것인가. 선출직은 참 묘한 자리다. 선거 때는 유권자를 하늘같이 모신다며 간, 쓸개를 다 빼줄 것처럼 하다가도 당선되고 나면 표변해서 귀에 거슬리는 얘기는 들으려고 조차 않는다. 말로는 주민을 주인처럼 섬긴다고 하면서 실재로는 자신의 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자들을 주인으로 모신다. 그러니 자신들을 비판하는 쓴 소리가 귀에 들어 올 리 없을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네스토르는 그리스 연합군의 왕 아가멤논에게 `그대는 마땅히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해야 하며, 또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말을 듣고 싶다면 그의 말을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2500년 전 트로이와 전쟁을 벌이는 그리스연합군 왕에게 지도자는 명령도 해야 하지만 마땅히 남의 말을 듣기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충언하는 신하가 있고, 비판과 충언을 잘 따르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10년간의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고이래로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지도자의 뛰어난 덕목이다. 자기 말만하고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사람 앞에는 윗사람의 비위나 맞추며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간신배들만이 남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올바른 비판에 귀를 닫아버리는 단체장들이 많다. 자신이 행정의 달인, 특정분야의 전문가임을 자처하며 자신을 공천해 준 정당의 정책을 무시하고,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의 목소리조차 외면한 채 귀를 닫고 문을 걸어 잠그는 단체장도 있다. 거기에 토론회장에서 비판했다고 눈을 부라리는 도의원까지.

비판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선악·시비·미추를 평가하여 그 가치를 논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비판한다고 비난 받을 일도 아니다. 비판은 내가 매몰되어 보지 못했던 것을 일깨우는 일이다. 비판은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나를 비판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정당한 비판은 비판받는 대상을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지역의 선출직 공직자들은 비판받기를 싫어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푸른 고양이든 빨강 고양이든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비판에 겸허할 줄 아는 사람을 잘 골라서 뽑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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