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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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9.05.1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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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본인 맞아요?”

은행 창구에 통장을 내민 나에게 은행원이 물었다. 이름을 보니 남자 같은데 여자인 내가 은행 업무를 보려 하니 확인 차 물어보는 듯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이름이 남자 같지요?”하니 은행원도 따라 웃는다. 이런 말은 숱하게 많이 들었다. 첫 발령을 받을 때도 남자인 줄 알고 남 교사의 업무로 배정해 놓았다가 다시 바꿔주는 일도 있었다.

‘신금철’, 영락없이 남자 이름이다. 억양도 강하다.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주춤거린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돌림자로 이름을 지었다. ‘철자’가 돌림자여서 철자 앞에 어떤 글자를 붙여도 여자다운 이름이 될 수 없다. 어린 시절엔 이름 때문에 별명이 많았다. 친구들이 금속이란 금속은 다 붙여주며 놀렸다. 사실 내 이름의 한자 풀이는 이제 금(今)에 맑을 철(澈)이다. 한자의 뜻을 보면 부드러운 이름이다.

작명가들은 이름에 운명이 달렸다고 하지만 개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내 생에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귀한 이름을 사랑한다.

이름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름을 알려 자신을 드러내려 애를 쓰고 높은 곳에서 머무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인의 행동과 말에 따라 귀하게 대접을 받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가치 없게 불리기도 한다.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무차별적으로 욕설을 당하고 매를 맞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는 것처럼 평등한 게 또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름을 가진다. 길가에 뒹구는 돌들도, 풀 섶의 가녀린 풀들도, 땅 위를 기어다니는 미물들도…. 이름 지어진 모든 것들은 다 존재의 이유가 있어 생명이 있던 없든 간에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사람도, 가난하든 부자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누구에게나 이름은 오직 하나이다. 누구이건, 어떤 이름이건 귀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름이 귀한 대접을 받으려면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성실한 삶이 필요하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이름이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며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고, 인류를 위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의 추앙을 받는 정치인, 예술가, 자선가들 이름 역시 주인이 이름값을 제대로 하였기에 사람은 사라졌어도 이름만큼은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있다.

요즘 언론 매체나 인터넷의 검색창에는 검색어 1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름들이 자주 등장한다. 더러는 한때 많은 이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으로 떠올랐을 이름들이다. 권력을 휘두르던 이도, 생일 파티로 수억을 쓰며 행복에 취했을 그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연예인도…. 그러나 주인의 지나친 욕심과 세속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탓에 대접받던 이름이 많은 이들에게 원성과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추락하여 이름의 가치를 잃었다. 나 역시 칠십 년을 함께한 이름에 부끄럼이 없는지 돌아보며 얼굴을 붉힌다.

명예로운 이름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존경의 삶은 못되더라도 행여 내 이름이 만인의 지탄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항상 신중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며 헛된 욕심과 유혹을 멀리하고 성실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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