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오를랑 (Saint Orlan) Carnal Art-신체예술
성 오를랑 (Saint Orlan) Carnal Art-신체예술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9.05.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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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성형수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예뻐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것이다. 요즘은 과거와는 달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성형수술을 하고 있으며 그 이유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그 이유의 다양성과는 달리 공통된 목적은 외모를 좀 더 미적으로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성형수술이라는 외과적 시술을 미를 위한 수단이나 의료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기법으로 채택하여 자신의 신체에 외과용 메스(scalpel)를 대는 한 예술가가 있다. 바로 프랑스 태생의 복합매체 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성 오를랑이다.

오를랑의 첫 번째 성형수술 퍼포먼스는 1990년에 있었던 <성 오를랑의 환생 The Reincarnation of St. Orlan>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서양 미술사에서 남성들의 욕망에 의해 이상화된 미의 도상들을 모델로 하여 3년 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대수술의 연작 퍼포먼스였다. 이 성형수술 프로젝트에서는 완료된 수술이나 그 결과물이 아닌 수술의 과정, 퍼포먼스, 단계별로 비디오와 사진을 통해 기록되는 동안 의식을 갖고 완전히 깨어 있는 작가 자신의 몸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1993년 그녀의 일곱 번째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수술 장면이 도쿄, 뉴욕, 파리 등으로 실시간 위성중계가 되었다. 여기서 그녀의 찢어 발겨진 피부 내부의 살점들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대중에게 전송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구토를 하거나 눈을 가리게 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는 부분마취 수술을 통해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기도 하고 말을 하기도 하며, 웃으면서 관객들과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수술을 하는 동안 모르핀의 위력으로 고통 없이 그 과정을 즐기며 만족해하는 그녀와는 반대로 관객은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지만, 한편으로는 시선을 붙잡히게 된다.

오를랑은 왜 이렇게 가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자기 현시적인 예술적 표현에 매료된 것일까? 그녀는 피(被)학대 음란증자(masochi st)였을까? 현대 사회에서의 신체는 결코 일관된 정체성을 말해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람의 외양(skin)은 그 사람의 실재를 반영해주지 않는 하나의 속임수일 뿐 정신에 주어지는 표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살(chair)은 `물질적'(materiels)이거나 `정신적인'(spirituels) 사실들의 총합이 아니다. 따라서 그녀의 퍼포먼스는 수술이라는 매체를 빌려 `육체'의 옷을 갈아입는 수많은 자기변형을 통해 다중적이고 비고정적인 정체성의 추구였던 것이다.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처럼 오를랑은 사람의 외양(skin)을 구성하고 있는 `살'의 수정을 통해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자신의 몸을 재료 삼아 여성 주체로서의 비고정적이고 노마디즘적인 수행적 정체성 찾기 놀이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의 상대성을 강조하며 사회에 만연한 미의 표준화에 대한 비판적 측면도 있었다. 획일적인 세계 안에서 표준화된 미의 기준을 비판하며 반미학의 나르시시즘을 통한 끊임없는 변주와 탈주는 그녀가 거듭나는 새로운 정체성 찾기의 돌파구였던 것이다.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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