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연가
무심천 연가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5.1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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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무심천! 고상하고 아름다운 참 좋은 이름입니다. 천(川)은 내입니다. 개울이라 하기도 하고 개천이라고도 하는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좋은 시냇물을 이르지요. 대부분 내들이 안양천과 영운천처럼 지역명이 붙는 이름을 갖는데 무심(無心)이란 형이상학적 이름을 갖는 건 파격이자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예로부터 맑은 고을인 청주(淸州) 도심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으니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오랜 세월 청주시민들의 젖줄로, 허파로, 쉼터로, 광장으로 기능하며 유유히 그리고 무심히 흐르고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요. 무심천은 가덕면 내암리 567m 지점 북쪽 계곡에서 발원해 문의면과 남일면 일대를 지나 청주시를 동서로 가르며 미호천에 흘러드는 금강의 제2지류입니다. 전체길이 34.5㎞, 유역면적 177.71㎢의 청주를 대표하는 도시하천이지요.

수질이 좋아져서 수달을 비롯한 많은 종류의 수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둔치에는 갈대와 달맞이꽃을 비롯한 다양한 초목들이 무리지어 사는 청주의 명소이자 보고입니다. 수심은 깊지 않지만 하천 폭과 둔치가 웬만한 강 못지않게 넓어 생태공원은 물론 하상도로로, 자전거 전용도로로, 시민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으며, 롤러스케이트장과 야외공연장 등 다양한 용처로 쓰임 받거니와 봄이면 길게 뻗은 양쪽 천변에 벚꽃과 개나리들이 만발해 장관을 이룹니다.

필자도 2000년도에 첫 시집 `무심천 개구리'를 출간해 무심천을 부각시킨바 있지만 일찍이 많은 문인문객들이 청주를 찾아와 무심천을 노래하고 무심천의 사계를 아름답게 채색했습니다.

노산 이은상은 `그 옛날 어느 분이 애타는 무슨 일로/ 가슴에 부여안고 이 물에 와 소소할 제/ 말없이 흘러만 가매 무심천이라 부르던가/ (중략) / 이 물에 와 호소하던 이/ 몇 분이나 되던고'라고 노래했고, 지역출신 한병호 시인은 무심천 둑길을 걸으며 `무심천을 바라본다/ 흐르는 물빛도/ 떠다니는 유람선도 없다/ (중략) / 보이는 게 없다/ 보이는 건 빈 하늘뿐이다/ 어떤 이는 미라보다리 밑에 흐르는/ 세느강을 생각한다지만/ 무심천은 이대로가 좋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대로가 좋다'고 노래했습니다.

이런 무심천 예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먼 훗날에도 이어질 것입니다. 아무튼 지역의 향토사학자들과 어문 전문가들이 보는 무심천의 유래는 크게 5가지입니다..

불교용어 `무심'(無心)에서 왔다는 설과 무심하게 말없이 흐르는 내(川)라는 설, 수심(水深)이 없는 내의 `무심천'(無深川)이라는 설, `무심둑'내지 `무성둑'에서 파생됐다는 설, 중국 지명 심천(沁川)을 차용했다는 설 등이 그것입니다.

언뜻 보면 불교 관련설이 유력해 보이나 시간적 논리가 맞지 않거니와, 불교가 성했던 고려시대에는 무심천이란 이름을 찾아볼 수 없고, 무심천 내지 대교천은 조선 후기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회자되는 전설 또한 없진 않으나 스토리텔링이 필요해 약합니다.

필자는 시간이 나면 무심천 천변 길을 즐겨 걷습니다. 한두 시간 걷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상쾌해지거든요. 신 새벽을 열며 무심천을 걷는 기분도 좋거니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걷는 어스름 저녁 길도 좋고, 늦은 밤 청주의 야경을 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사색을 하며 천천히 걸어도 좋고, 아무 생각 없이 바삐 걸어도 좋습니다.

무심천을 따라 걷다 보면 가슴 속에 자리했던 탐욕도 분노도 미움과 원망과 자학까지도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걷고 뛰는 선남선녀들이 모두 이름답게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젊은이들에게서 넘치는 에너지를 봅니다. 이렇듯 청주에 무심천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자 홍복입니다. 타지역 사람들도 청주에 와서 무심천 수변 길을 꼭 한번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무심의 행복을 누릴 것이니.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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