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의 역설(逆說)
자아(自我)의 역설(逆說)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5.1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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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각자의 생각을 들여다보라. 생각의 바다에는 바깥세상보다 훨씬 다양하며 재미있고 흥분되는(dynamic and exciting)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면 평생 심심할 일이 없으며 건질 것도 많다. 자신의 생각 속을 들여다보면 보물을 캘 수 있다. 생각의 바다에는 즐겁고 가치 있는 일도 많지만 이상한 일도 많다.

담배 끊는 경우를 살펴보자.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담배 끊는 일은 어렵다. 끊어야지 하고 안 피운다. 잠시 후,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참는다. 다시 한 시간 후, 피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든다. 마음을 먹고 끊기로 했으니 참는 게 좋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다음 날 밥을 먹고 나면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담배에 대한 욕구는 갈망의 수준이 된다. 마음 안에서 속삭인다. 그 좋은 느낌을 포기할래? 꼭 지금 끊어야 하나? 일주일만 더 피우고 끊어도 되잖아? 저항한다. 또 피우면 다시 끊기가 어려우니까 참아야 해. 담뱃재도 그렇고 주변이 너무 지저분해지잖아. 마음 안에서 또 공략을 한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그 자학적인 기분을 즐기는 것이 사나이 인생이고 인간미가 있어 보이잖아? 굴복한다. 그래 맞아 너무 야박하게 굴면 답답해 보이잖아? 갈등하다 다시 필 때처럼 맛있는 담배는 없다. 담배연기를 내뿜을 때의 그 기분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한편에서는 담배 끊기에 실패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담배 끊을 때 드는 생각을 들여다보면 이상하다. 나는 담배를 끊고자 하며 그에 합당한 이유를 수십 가지 갖다 댄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면서 피워도 되는 이유를 수십 가지 만들어낸다. 담배를 끊고자 하는 건 누군가? 나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건? 그것도 나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끊고자 한다. 이상하다. 원하는 사람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마음 안에서 서로 싸운다. 나와 내가 서로 싸우고 있다. 이렇게 나와 내가 싸우는 현상을 자아의 역설이라고 한다.

담배 끊는 일에서만 그럴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한잔하지? 유혹이 생기지만 거절한다. 일해야 돼. 언제까지 내야 하는데? 3일 남았어. 아직 많이 남았네, 스트레스받는데 한잔하고 머리를 비우고 시작해, 그럼 빨리 끝낼 수 있어. 그럴까? 마시러 나간다. 담배를 끊을 때와 똑같은 구조의 싸움이다.

잠에서 깬다. 몸이 무겁다. 잠 속으로 빠져들려고 한다. 오늘 할 일을 생각해본다. 회의도 해야 하고, 강의도 해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고 할 일이 꽤 많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 한다. 일 때문에 일어나야 한다고 나에게 채찍질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30분만 더 자도 되는 이유를 만들어 내기 바쁘다. 9시 회의니까 씻는데 15분 절약, 밥 먹는데 10분 절약, 옷 입는데 5분 절약 30분 정도는 더 자도 되겠네.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철학 하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 이런 구조의 문제에 봉착했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내가 나와 싸우는 구조 속으로 들어섰다면 나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될 것이고, 술 마시러 나갈 것이며, 잠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다. 담배를 끊거나, 술 마시러 나가지 않거나, 정신 차리고 일어나려면 안 싸워야 한다. 어떻게 안 싸우냐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지 않으면 되고, 술 마시기를 원치 않으면 되고, 졸리지 않으면 된다.

그럼 싸울 일이 없다. 어려운 말로 하자면 자아의 역설은 자아가 없어지면 안 생긴다. 담배, 술, 잠과 같은 일상사를 놓고도 철학자들은 이상한 소리(철학)를 한다. 나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철학자는 싱겁다. 그래서 집사람은 집안에서 철학을 하지 못하게 한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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