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시간
나무의 시간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5.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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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봄이 요술봉을 휘두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서 깬 초록이 푸른 실타래를 휘휘 풀어헤친다. 어느새 온 산 가득한 신록이 부셔 나는 눈을 반쯤 감고 바라다보고 있다. 이제 녹음이 짙어갈 일만 남았으려니 한숨 돌리고 있는 숲에서 난데없이 세찬 바람이 일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노대바람이다. 무방비로 몰아친 강풍은 나를 털썩 주저앉힌다. 나를 지탱해 온 자존감의 한 쪽 가지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부러져 나간다. 순간 머릿속은 온통 암흑이 되어 마음의 마디마디가 아파온다. 통증으로 신음도 내지 못한 채 눈물만 흐른다. 가늘던 줄기가 점점 굵어져 소낙비가 된다.

무슨 이유로 지금까지 지키고 살려고 애쓴 나의 자존감을 난도질 하는지 모르겠다. 왜, 누가, 무엇 때문인지 실낱같은 의문도 풀리지 않는다. 전혀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일로 나를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건 분명 음해다.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이렇게 모욕을 주는 이가 누구일까. 억울하다고 항변해 보아도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 몸체도 없고 꼬리도 보이지 않는 소문의 실체를 찾을 길이 없다.

바람은 나를 엉망으로 흐트러뜨린다. 옷들은 뜯겨나가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바닥에 쓰러져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마음의 안침에 각인되어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양각으로 도드라져온다. 몇 해 전에 보았던 층층나무다.

농막을 둘러싼 나무는 여름이면 그늘을 누리게 하는 은혜로운 나무다. 그이는 가지가 늘어져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봄에 전정을 했다. 물을 흠씬 쏟아내더니 얼마가 지나자 빨갛게 변하여 마치 피를 흘리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피는 점차 응고되듯이 굳어져 갔다. 여러 날을 그렇게 앓는 듯 보였다. 생소한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섬뜩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여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나무는 사람처럼 새살이 돋아나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스스로 캘러스라는 세포조직을 만들어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처 위를 덧씌운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의 피가 응고되고 딱지가 앉기까지 오래 걸리듯이 나무는 수개월에 걸쳐 다친 부위를 완전히 덮는다. 그러면서 아물게 된다. 사람은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을 쓰지만, 나무는 상처를 닫는다고 한다.

호주의 피너클스 사막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만 오천 개의 석회암 기둥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나를 붙들었다. 사막에 난데없이 웬 돌기둥일까 의아했다. 수 만년동안 강한 바람이 사막의 모래를 날려 땅속 깊이 숨어 있는 석회암 기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의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나무에도 상처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수액을 흘리며 조직을 만들고 그 아픈 곳을 완전히 덮으며 상처를 닫기까지 수년이 걸린다. 나에게도 그런 기다림이 필요하리라.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고통을 앓아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아득한 사막이다. 거기서 불어오는 모랫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언젠가는 그 바람이 나의 진실을 드러내 줄 거라 믿으니까 말이다.

사막에 돌기둥이 드러나 장관을 이루었듯이 나에게 닥쳐온 곡해도 오해였음을 훤히 보여주기를 시간에 기대어 보기로 했다. 화를 내고 뾰족하게 나를 세우기보다 나무가 수액을 흘려 자신의 상처를 덮듯이 나도 눈물로 시간을 견뎌볼 참이다. 나는 지금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나무처럼 상처를 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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