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에 잠든 위대한 스승, 강세황
진천에 잠든 위대한 스승, 강세황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19.05.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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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언젠가부터 스승의 날의 분위기가 변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와 작은 꽃다발 하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던 순수한 의미는 쇠퇴하고, 축하받아야 할 선생님도 감사를 표해야 할 학생도 불편한 날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스승의 날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것이 아닌가 싶다. 기억하지 않으면 불편하지도 않은 법이니까.

교육의 변화에 대해서도 참 많은 말이 오간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구세대의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창의적 교육으로 가야하며, 그에 맞게 교사의 모습도 변해야 한다고 한다. 올해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서는 과거와 달리 `학생을 믿어주고 잘 소통하는 선생님'이 이상적인 선생님 상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각하는 이 이상적인 스승이 18세기 조선에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스승은 지금 충북 진천 문백면 도하리 야트막한 언덕에 잠들어 계신다. 바로 표암 강세황의 이야기이다. 18세기 조선 “예술계의 총수”라 불렸던 강세황은 그 스스로도 예술적 업적을 이루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불세출의 화가 김홍도를 키워냈다는 점에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강세황과 김홍도는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마음을 나누고 소통했던 사제지간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강세황의 문집 『표암유고』에 잘 남아있다. 김홍도는 자신의 호를 단원이라 지으면서 스승 강세황에게 이름에 대한 글을 청했고, 그 요청에 화답하여 강세황은 두 편의 글을 남겼다. 거기에서 그는 제자의 인품과 재능을 아낌없이 칭찬하였다.

“김홍도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기예를 지녀 인물, 산수, 누각, 꽃과 곤충, 물고기와 동물 등 모든 분야에서 신기를 이루었다. 그의 그림은 자연의 조화를 빼앗는 듯 완벽하여, 역사상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할만하다.”

이 글에서 강세황은 김홍도와의 오랜 인연도 언급하였다. 김홍도가 어렸을 적 강세황의 문하생으로 있었는데, 일찍이 김홍도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본 강세황이 제자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화결을 가르쳤다. 이후 김홍도가 성장해서는 같은 관청에서 일하는 동료가 되었고 나중에는 예술계에 함께 몸담으며 진심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비단 이 글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김홍도의 작품 수십 점에는 강세황이 쓴 화평이 담겨 있는데, 글을 통해 작가의 뛰어난 화풍을 예찬하기도 하고 작가의 숨겨진 의도를 집어주기도 하였다. 그걸 보고 있으면 마치 강세황과 김홍도가 마주 앉아 작품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소통이다. 또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명작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바로 호암미술관 소장 《송하맹호도》이다. 한국 호랑이하면 떠오르는 소나무 아래 털을 빳빳이 새우고 두 눈을 부릅뜬 호랑이가 바로 두 사람의 작품이다.

이처럼 강세황과 김홍도는 수십 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스승과 제자에서 동료로 친우로 평생 동안 마음을 나누는 지기가 되었다. 두 사람이 남긴 작품과 일화를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꿈꾸는 사제지간이 아닐까? 스승은 제자에게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보내며,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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