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선택이 아닌 책무다
명문고, 선택이 아닌 책무다
  • 전병제 한얼경제사업연구원장
  • 승인 2019.05.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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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병제 한얼경제사업연구원장
전병제 한얼경제사업연구원장

 

원래 경제와 교육문제는 모두가 전문가여서 100사람이 모이면 101가지의 주장이 나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충북 명문고 육성과 관련한 지역사회의 그동안 논쟁에 한 숟가락 더 얹을 생각은 없다. 다만 원론적인 질문 하나, “충북은 어떤 용도에 쓰기 위해 명문고를 만들고 지역의 인재들을 기르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맞다. 요즘 삼척동자도 한마디씩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가 적어도 21세기 남은 80년을 지배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가공할 기술진보는 열심히 얘기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 속의 사회구조와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모하고 그것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가질 것인가에 대하여는 별반 관심이 없다.

2017년 10월 서울대 유기윤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논문은 2090년 미래사회의 계급구조를 4개 층위로 파악한다. 제1계급은 0.001%의 플랫폼 소유주, 제2계급은 0.002%의 플랫폼 스타, 제3계급은 인공지능(AI), 그리고 제4계급은 99.997%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 단순노동자)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렇게 갈망하고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어 하는 권력과 부의 대부분을 0.003%의 제1계급과 제2계급이 독점한다. 그 0.003%의 권력자와 부자가 내 자식일 확률은 솔직히 희박하다. 반대로 인간의 고유 특성을 AI에 점령당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가짜직업'과 `기본소득'으로 연명하는 형태의 단순 노동자로 전락할 확률은 훨씬 높은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가 우리 미래의 자화상이라는 진단이다.

70년 후가 배경인 디스토피아류(類)의 공상소설이 아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새로운 계급사회는 이미 문밖에 와 있다. 대부분 현대인들에게 단 한 순간도 MS나 구글, 네이버나 다음, 갤럭시나 애플이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극강의 IT시스템에 기반한 국가·사회제도, 정치가와 자본가, 언론·문화 권력자들의 영향력, 그럼에도 그들이 쏟아내는 정보와 창조물을 숭배하고 소비하는데 정신이 팔린 일종의 좀비화 단계가 지금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누리는 정보의 풍요 속에서 과연 나의 고유성은 무엇인가 반문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종속의 미래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종속된다면 내 지역이 종속되는 것이고 세계의 권력에 대하여 내 나라가 종속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먼 미래가 아니다. 현재의 60대 전후는 생애의 나머지 20%, 자식 대는 적어도 생애의 50%, 그리고 지금 태어나는 손자 대는 생애 100%가 그런 계급사회와 당면한다.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의 대응전략은 우선 제1, 제2계급의 수를 최대한 늘려 권력과 부를 구조적으로 균형화함과 아울러 시스템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그럴 능력과 의식을 갖춘 전사(戰士)적 인재가 필요하다. 처음의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 있는 듯하다. 즉, 지역 명문고가 모든 대안은 아니지만 국가교육정책이 실패해 온 상황에서, 그리고 지방이 세계를 상대하는 무국경의 시대에서 지역주도의 명문고는 미래의 극단적 계급사회를 타파하는 전쟁에 나설 인재들의 1차 양성 기반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명문고 찬반논쟁은 한가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인재 용도론도 궁색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서열화 불용론도 무기 없이 전쟁에 나가 다 포로가 되라는 것과 같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절박한 책무다. 그 절박성에 상호 공감만 할 수 있다면 강호대륙(江湖大陸)과 앵행도리(櫻杏桃梨)는 대립이 아닌 보완의 관계로써 충북 명문고 육성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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