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컵은 네가 씻어
네 컵은 네가 씻어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사서
  • 승인 2019.05.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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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사서

 

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얼굴로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학창시절 성적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부모님 걱정을 들을만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 가듯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살았다. 싸움과 큰소리 나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싫어했으며 누군가와 분쟁이 생기면 먼저 사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한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그 상황에 순응해버린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대우가 분명 있었음에도 적당한 대처를 하지 않거나 내 잘못으로 치부해버린다. 때론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나서서 싸워줬음 한다. 정작 나는 문제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서 「네 컵은 네가 씻어」(미지 지음, 걷는사람)의 첫인상은 시원하면서도 거부감이 들었다. `네 컵은 네가 씻어'라고 말해주니 속이 다 시원했지만 강한 어조에서 오는 거부감이 들었다. 정작 작가는 솔직한 감정 상태를 그때그때 말하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작가는 나처럼 보통의 사람으로 살았다. 20개월 아이를 잃고 후회되는 일이 없었는지, 아쉬운 건 없었는지 되돌아보면서 순간순간 하지 못했던 말들이 너무나 많았음을 깨닫는다. 그 말들을 모아 놓은 것이 이 책이다.

작가가 못했던 말들은 쉬워 보이지만, 나도 삶 속에서 내뱉지 못한 말들이었다. 이것저것 내 미래에 관하여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게.”라고 말하지 못했으며, 불합리한 상황에서 “그거 좀 이상한데요.”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나 때문에 상처받았을 사람들에게 “나 때문에 속상했니?”라고 묻지 않았다.

엄마는 아침에 부엌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있으면 화가 난다 하셨다. `먹은 것은 치우고 잤어야지'라는 잔소리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는 결혼하기 전엔 그 잔소리가 싫어 당연히 할 일이었음에도 엄마를 도와준다는 기분으로 먹은 것을 설거지하곤 했다. 결혼을 하고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컵들에 짜증이 났다. 책상 위에 먹다 남은 커피가 담긴 채 있는 컵, 식탁 위에, 탁자 위에 컵들이 종종 발견됐다. 그때 나도 말했어야 한다. 네 컵은 네가 씻으라고. 물론 이제 나는 남편과의 접점을 찾았다. 그 컵을 발견하면 싱크대로 옮겨다 놓는 일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남편은 종종 내가 무심코 내 던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상황 속에서 인간관계가 망가질까봐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오히려 상처를 받을까봐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생각과 내 선택을 누구보다도 내가 믿어줘야 한다. 그래야 주변에도 무엇이든 당당히 말할 수 있고, 혹시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일단 나 자신을 믿어보고 싶다. 무한한 가능성과 드넓은 이해심으로 나 자신을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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