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현
안장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9.05.0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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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를 말하다


정 인 영 사진가
1973년부터 우리나라 문화재를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 안장헌. 그는 1947년 충청남도 당진에서 농업고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취재하러 온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반한 그가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사달라고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자식의 끈질긴 요구에 아버지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일제 목측카메라서모카를 사 주었다.

피사체와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핀트를 맞추는 카메라였지만 그는 뛸 듯이 기뻤다. 그때 사진 찍는 방식에 익숙 해온 나머지 지금도 웬만한 거리의 피사체는 눈어림 짐작으로 사진의 선명도를 담아낸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스냅 사진을 찍었고, 사진 찍을 때마다 카메라의 자료를 기록해 사진연구에 응용했다.

스스로 사진작업을 하는데 익숙했던 그는 수동으로의 암실작업을 위해 집 목욕실에 벽을 뚫고 나무판과 거울을 이용해 45도 방향의 책받침을 붙이고 빛이 들어오게 하여 인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가 사는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절이었다. 밀착은 물론 5X7과 8X10인치 사진의 인화가 벨로오즈카메라를 거꾸로 사용한 끝에 완성되었고 희열을 느꼈다.

이 시기까지 그의 사진공부는 소년의 호기심 정도였다. 누가 곁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학교공부는 바닥이었다. 다행인 것은 당진중학교에 사진반이 있어 라이카 35mm 카메라와 암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사진에 관심 있는 선생님 한 분이 학교의 카메라와 암실시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다. 사진의 관심과 욕구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1965년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학과 공부보다 사진에 관한 공부에 한층 열을 올렸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독학한 후 영어도 대학에서 독학하다시피 했다. 그 덕분에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 만들어진 불교 문화재 책을 보면서 사찰, 기와, 벽화와 불상 등의 지식을 착실하게 쌓았다.

“불상이 일본은 권위적이고 위압감이 드는 반면 우리나라 것은 미소, 친절, 은근함이 있어 보면 볼수록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지요.”

80년대가 되면서 그의 사진작업은 본격적 성장기에 들어섰고 이러한 집념은 또 자연과 어우러진 불교 문화재를 필름에 담아 열정으로 무르익어 갔다.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낙선재, 수원 화성, 능묘의 석물 등이 그의 손에 의해 사진으로 태어났다.

이렇게 실력이 늘어난 것은 한국사진 역사의 원로인 백오 이해선(조선왕족의 후손)에게 배움을 받은 것도 작용했다. 그와의 인연이 불교 문화재 사진작업의 계기가 되었다. 30~40kg 되는 카메라 장비를 지고 서너 시간씩 돌아다니면서도 전혀 지칠 줄 몰랐다.

그의 사진작업은 특히 경주, 공주, 부여가 많다. 경주 남산은 골짜기와 능선을 가리지 않고 들어선 상인들이 새긴 크고 작은 마애불상들이 즐비해 ‘부처님의 산’으로 명명된다. 백제의 도읍지 공주와 부여도 그에게 큰 의미를 안겨주었다. 계절, 풍광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찰과 함께 있는 문화재들을 사진에 담았다. 각고의 노력으로 수백 만장 사진으로 이루어낸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현듯 살아있는 부처와 있는듯했다. “아침 햇살이 빛날 때 돌부처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져 나오고 있음을 보면 내 마음속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집니다”라고 하는 그의 말에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살찌우는 우리나라 불교 문화재의 깊은 뜻이 들어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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