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5.0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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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어느덧 오월입니다. 꽃피는 사월이 가고 녹음방초 우거지는 오월이 왔습니다. 오월은 어린이날(5일)과 부부의 날(21일)이 있는 사랑의 달이고, 어버이날(8일)과 스승의 날(15일)이 있는 보은의 달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참 좋은 달이지요.
하지만 오월은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봄날이 가는 가슴 시린 달이기도 합니다. 절기상으론 봄의 마지막 달이지만, 넝쿨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싱그러운 달이지만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어정쩡한 달이 된 지 오래입니다.
한반도에 불어 닥친 기상이변으로 봄가을이 짧아지고 여름 겨울이 길어지는 탓입니다. 하여 봄이 왔는가했는데 어느새 여름이고 가을이 왔는가했는데 어느새 겨울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했던 벚꽃도 지고, 목련꽃도 지고,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조팝나무 꽃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동장군을 물리치고 개선장군처럼 우리 곁에 왔던 아름다운 봄이 꽃들의 낙화와 함께 지고 있습니다.
올해도 꿈같던 봄날을 그렇게 속절없이 보냅니다. 이맘때가 되면 백설희가 불러 히트한 `봄날은 간다(손노원 작사, 박시춘 작곡)'라는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읊조립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1954년에 발표된 꽤나 오래된 노래인데 지금도 여전히 절창입니다. 2003년 시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시인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가요 1위로 선정된 노래답게 노랫말이 아름답고 감칠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노랫말처럼 제게도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시절도 있었고,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어릴 적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그 시절이 몹시 그립습니다.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노래를 읊조리며 자위하는 거죠.
그래요.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듯이 가는 봄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알뜰한 그 맹세에도, 실없는 그 기약에도, 얄궂은 그 노래에도 봄날은 무정하게 갑니다.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이든,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이든,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이든 우리네 인생길에는 봄날은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와 같습니다.
봄날은 청춘을 상징하고 호시절을 의미합니다.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옷고름 씹던 열아홉 시절이 있듯이 사람들은 누구나 청춘이 있고 호시절도 있습니다. 청춘과 호시절은 춘몽처럼 짧지만 추억은 열차처럼 깁니다.
그러나 청춘과 호시절은 마음먹기 달려있습니다. 봄날이 가고 없다고 여기는 이에게는 한없이 짧고, 날마다 봄날이라 여기며 사는 이는 언제나 청춘이고 호시절입니다.
그렇습니다. 봄날은 꿈과 사랑입니다. 거창한 꿈이 아니어도, 열렬한 사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꿈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당신은 아직도 봄날입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사랑을 주고받는 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월이 바로 그런 달입니다. 봄날은 가지만 사랑과 보은지정은 그대 곁에 두고 갑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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