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아버지의 뜰
일상생활-아버지의 뜰
  •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 승인 2019.04.30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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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비가 연일 내린 탓인지 집 앞 작은 뜰에 자란 것들은 나름의 힘찬 기운을 발산한다. 등나무와 금은화의 여린 순은 앞다퉈 질주를 벌이고, 물속 깊은 잠에 빠졌던 연들은 물 밖으로 잎을 내보낸다. 한바탕 꽃 잔치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꽃들의 잔치가 연이어 벌어진다.

초대 손님은 벌이 되어 윙윙거리고, 나비는 살포시 날개를 접고 차려진 음식에 감사함으로 음미한다. 새들은 돋아난 새순들 사이를 비행하고 초대에 답하는 노래로 흥을 돋운다. 앉아 지저귀는 새를 노리는 고양이는 불청객으로 한몫한다. 초대받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덩달아 발을 멈추고 잔치를 구경하고 영상으로 담아간다.

이맘쯤에는 제비꽃, 앵두꽃, 수선화, 히아신스, 튤립이 지고 영산홍, 팥꽃나무, 블루베리가 핀다. 그리고 아이리스가 꽃 대공을 올리고 서로 순번을 정해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런 순간순간 나도 꽃을 피울 수 있어 하며 잔디까지 꽃을 피운다. 말 그대로 꽃 대궐이다. 구석구석 손바닥만 한 것부터 좁쌀보다 작은 꽃까지 존재를 드러내기에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다. 그런 꽃들 속에 단연 돋보이는 꽃이 있다.

이따금 꿈속에 미소 지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꽃이 함박 피었다. 깊고도 깊은 붉은색, 달고 있기 어려울 정도의 두터운 꽃잎, 합장 하듯, 한 겹 한 겹 보태어진, 아버지가 평생 가족을 보살폈던 마음을 담은 듯 한 애잔한 마음을 담았다. 살아계실 때 가장 아끼던 나무라 그런가, 그 어느 꽃의 자태와 비견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런 꽃을 달고 있는 나무줄기는 평생 집안 살림 도맡아 하시느라 쉬고 즐길 겨를 없던, 그래서 당신 몸은 마르고 거칠 대로 거칠었던 그 모습을 닮았다. 가느다란 줄기지만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마딘 줄기다.

세 갈래의 줄기에서 한 가지만 꽃을 피우고 두 가지가 힘을 다한 것인지, 그 마딘 줄기 옆으로 많은 순을 내었다. 전에는 그 순을 다 제거했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생의 한계를 느낀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한 줄기씩 조심스럽게 분리해서 다른 곳으로 이식하였다.

아버지가 좋아하고 지극정성으로 키우던 모란이 올해도 아버지를 닮아 피어줬다. 모든 화초들을 앞에 두고 먼발치서 자리하고 있는 모란, 꿈속에서조차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미소로서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담았다. 아버지를 닮았단 소리를 늘 듣는 난 아버지의 뜰을 가꾸고 또 하나의 가족을 책임지는 아버지가 되어 있다.

사랑하던 남녀가 있었다. 전쟁터로 떠나며 기다려달라는 남자의 부탁에 오랜 세월 기다렸건만 돌아오지 않고, 눈먼 악사의 노래를 통해 여자를 그리워하다 죽은 남자의 이야기를 접한다. 남자가 죽어서 꽃이 되어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 여자는 악사의 노래 속에서 가리키는 머나먼 이국땅을 찾아가 꽃으로 변해 버린 남자 곁에서 기도를 드린다. 사랑하는 남자의 곁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자신도 꽃으로 변해 나란히 지내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 남자는 모란이 되었고, 여자는 작약이 되었다. 남자가 먼저 죽어 꽃이 되었기에 모란이 피고, 질 때쯤이면 작약꽃이 핀다.

꽃은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맺힌 사연을 담고 있다. 그래서 꽃에는 다양한 꽃말과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모란 옆에 작약을 심었다. 그리고 가족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심는다. 내 아들이 잘 아는 금목서도 심었다.

이제 아버지의 뜰은 온 가족이 함께 아버지의 미소속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많은 것을 초대하고 공유하는 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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