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부른 4월의 노래
못 다 부른 4월의 노래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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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도심을 흐르는 율량천에서 제비를 만났다. 몇 년 만인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 사람들은 온통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데, 수면을 박차며 날아오르는 저 제비가 이곳에서 살아남을지 걱정스럽다.

퇴계 이황은 18살 어린 나이에 <야지(野池)>라는 시를 지었다.

노초요요요수애(草夭夭繞水涯) 고운 풀 이슬에 젖어 물가를 둘렀는데/ 소당청활정무사(小塘淸活淨無沙) 작은 연못 맑고 깨끗해 모래도 없네/ 운비조과원상관(雲飛鳥過元相管) 구름 날고 새 지나는 것이야 제 맘대로이나/ 지파시시연축파(只?時時燕蹴波) 단지 때때로 제비가 물결 찰까 두려워라.

흔들림 없이 맑고 깨끗한 작은 연못의 고요한 평화, 이슬 맺힌 풀잎,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춰 보이는 잔잔한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제비의 순간적인 동작에 흔들리고 일렁이는 물결이 걱정스러운 18살 퇴계의 마음. 그의 제자 김부륜(富倫)은 <퇴계언행록>을 통해 “사람이 지난 순수한 본성이 사람 욕심의 개입으로 순수성을 상실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제시한 것”이라면서 “이것은 천리(天理)가 유행(流行)하는데 혹시 인욕(人慾)이 낄까 두려워한 것이다.(千里流行 而恐人欲間之)”고 하였다.

예감대로 올해 4월도 그다지 평화롭지 않은 일들의 연속으로 보냈다.

우리의 4월은 체제와 이념으로 포장된 국가의 폭력적 권력으로 백성의 생명과 자유쯤은 전혀 감안하지 않는 제주 4.3사건의 치유되지 못한 비극으로 시작되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고쳐야 할 구조, 즉 국가가 실제 작동하는 방식 및 조직의 실체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 모순이거나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용서와 화해를, 그리고 공동체의 복원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여태 깨닫지 못하고 있다.

4월 7일. 우리는 <껍데기는 가라>고 절규했던 시인 신동엽의 50주기를 추념했다. 한반도가 `중립의 초례청'이 되는 평화는, 독립신문의 창간일을 기념하는 신문의 날과 무관하지 않다. 일요일이던 이날 나는, 1920년대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와 언론인 월터 리프만 사이의 민주주의에서의 저널리즘에 대한 역할 논쟁을 떠올리며 공책에 적어 두었다.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언론이 시민들을 교육시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라는 존 듀이와, (언론은)상업적 이해관계 등 근본적 약점 때문에 여론을 왜곡한다는 리프먼의 상반된 주장 사이에 지금 언론의 진리와 실체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알아차리기 그리 어렵지 않다. 언론은 자주 권력의 부패와 전횡을 견제하는 적절한 수단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도구와 구조로서의 실체를 말한다. 그리하여 언론은 대체적으로 비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물론 감시와 견제를 통해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투명하며,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겠다는 언론의 사명은 존중할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사 이기주의이거나 집단에 대한 지나친 방패 역할, 혹은 자본적 수익에만 골몰하는 일은 없는지 스스로 경계하고 스스로를 감시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단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올해 4월 4일 우리는 산불이라는 또 하나의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이날 축구장 700배에 달하는 무려 1757ha에 이르는 산림을 불태웠다. 이 불로 2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당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주택과 시설물 916곳이 전소하고 4000천여명이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의 소방관과 소방차를 산불 발생지역으로 출동시켜 더 큰 위험을 막는 대응은 눈부셨다. 특히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은 사전에 학습과 훈련을 통해 익힌 대피 요령에 따라, 버스가 전소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더 큰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 다만 이 시련의 와중에 충분히 주목받아야 하는 소방관과 일반 시민들의 용기에 대한 칭찬이 인색한 언론의 보도 방식은 아쉽기 그지없다. 청주 시민신문에 릴레이 칭찬난을 고정 편집해 칭찬이 넘치는 긍정의 도시, 칭찬받을 일이 많은 청주 시민의 빛나는 삶을 자랑했으면 좋겠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은 평화를 향해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의 4월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감사와 긍정의 5월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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