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지 않는 죄
사유하지 않는 죄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9.04.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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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춘 사월의 소소리바람이 꼬리를 치며 골목을 누빈다. 휘감은 자리마다 찌그러진 페트병과 종이컵들이 `13인의 아이'(이상, 「오감도」)처럼 질주한다. 거친 바람을 타고 노는 생활 쓰레기의 일상적인 풍경에 느닷없는 공포가 엄습한다. 제 거주하는 공간 외엔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무서운 사람과 무섭다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보다 더 끔찍한 어둠과 피폐한 환경이 소용돌이치며 몰려온다. 우리가 생각 없이 던진 부메랑이다.

인간 중심으로 구도 된 문명은 그 편리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엄청나다. 생각 없이 계획하고 생산과 소비하는 사회, 이윤 추구에만 방점을 찍는 무책임한 범죄에서 면죄 받을 사람은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물이 도랑을 타고 하천으로 모여들고 다시 그 물줄기는 식수원으로 유입돼 결국 우리 내장으로 흘러든다. 종국엔 임산부의 자궁을 위협하고 아이들의 여린 살갗을 공격한다. 끔찍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600만 유대인의 학살을 총지휘한 히틀러의 수하 아돌프 아이히만은 그의 주장대로 정부의 충직한 관리였다. 그러나 훗날 그를 법정에 세운 죄명은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 즉 `사유하지 않은 죄'이다. 유대인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고안한 살인 열차를 위풍당당 주장하는 그의 무능은 마지막까지 그 정점을 찍는다.

사유하지 않는 자, 숙고하지 않는 자들이 그 시대만 있었을까? 인간 중심으로 빚은 폭력들은 결국 시커먼 구름 속으로 해를 가두고 우울한 일기를 만들었다. 인간을 만물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오만과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하지 않는 갑들의 무지와 기본적인 양심조차 갖추지 못한 무지와 무능의 집단들이 오늘 같은 이 현상을 만들었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조각한 작품이다. 그 작품을 지옥의 문 상단에 배치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생각하지 않는 죄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 1순위이기 때문이다.

야윈 양심이 지나간 골목마다 쓰레기는 넝마처럼 뒹굴고 낚시꾼들이 버리고간 간밤의 흔적들은 긴 천변을 타고 나뭇가지마다 스티로폼과 너덜거리는 검정 비닐을 문패처럼 걸어놓았다. 그 모습에서 우리의 아픈 미래를 읽는다. “나 한 사람쯤이야”가 만들어낸 역사에서 이제는 “나 한 사람만이라도”로 진행하는 새로운 역사가 이어져야 한다. 인류의 건강한 역사는 의식 있는 소수에 의해 진행돼 왔다. 면장갑을 끼고 철 집게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제정신 아닌 사람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철폐되는 그 순간까지 소수들의 의로운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야심한 밤에 누군가는 잔뜩 쓰레기를 버리고 가고 누군가는 그 뒤를 따라 쓰레기를 줍는다. 무서운 사람과 무섭다는 사람, 버리는 사람과 줍는 사람,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선과 악의 이분법의 고리를 이루며 공존했다.

여행 내내 쓰레기 하나 발견할 수 없고 개인 집 하천에도 작은 물고기가 노는 일본의 잔상은 아직도 상큼한 추억으로 여울진다. 우리도 이젠 선진국을 기준 하는 숫자놀음에서 벗어나 정서와 도덕 수준의 상위 개념으로 향상되어야 한다. 깨끗한 골목, 깨끗한 하천이 선진국 문화이며 의식이다.

어떻게 이루어낸 이 땅의 나라의 봄날인가. 골목마다 즐거워하는 `13인의 아이'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만년 봄날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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