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과 나뿐인 놈
나쁜 놈과 나뿐인 놈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4.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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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제목이 좀 거시기하죠? 미안해요. 좋은 분, 착한 분, 멋진 분, 훌륭한 분들도 많은데 언짢은 놈 타령을 해서. 잘 아시다시피 놈은 `야 이놈들아'처럼 남자를 낮잡아 부를 때 쓰기도 하고 `왜놈, 오랑캐놈, 도둑놈, 죽일 놈, 망할 놈, 괘씸한 놈, 고약한 놈, 치사한 놈, 더러운 놈'처럼 적대 관계에 있거나 악감정이 배어 있는 사람을 칭할 때 쓰는 비속어입니다.

그 많은 놈 중에 오늘은 `나쁜 놈과 나뿐인 놈'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대저 어떤 놈이 나쁜 놈이고 나뿐인 놈일까요? 나쁜 놈의 사전적 의미는 좋지 아니한 사람, 옳지 아니한 사람, 해로운 사람을 통칭하더군요.

그러니까 좋지 않은 사람도 나쁜 놈이고, 옳지 않은 사람도 나쁜 놈이고, 개인과 조직과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도 나쁜 놈입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나 조직과 공동체에 해나 누를 끼치면 나쁜 놈이라는데 이견이 없지만 좋지 않음과 옳지 않음의 유무를 가지고 좋은 분과 나쁜 놈으로 구분하는 건 무리가 있어요. 객관적인 준거에 의하지 않고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누구는 좋은 분이 되고 누구는 나쁜 놈이 되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나한테는 나쁜 놈인데 어떤 이에겐 좋은 분으로 기능하고, 내게는 좋은 분인데 그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이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호불호로 남의 좋지 않음과 옳지 않음을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튼,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자 하나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아 나쁜 놈 소리를 듣기도 하고 어쩌다가 밉상을 받아 나쁜 놈 대열에 들기도 합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인연 맺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긴 어렵습니다. 나쁜 놈이 되기도 했다가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며 사는 거죠.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뿐인 놈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바로 나뿐인 놈이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이외수도 나쁜 놈이란 나밖에 모르는 놈의 준말이라며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나뿐인 놈 되는 거라고 일갈한 바 있습니다.

`세상에는 딱 한 가지 종류의 나쁜 놈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나뿐인 놈'이다/ 나뿐인 놈이야말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쁜 놈이다/ 욕망은 `나뿐인'인간을 양산하기 위해 악마가 보낸 사육사다/ `나뿐인 놈'은 어김없이 `나쁜 놈'으로 성장해서 온갖 범죄로 세상을 더럽힌다'고.

그래요. 나뿐인 놈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안일과 편익만을 추구하고 도모하는 오직 나뿐인 놈을 일컫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공동체가 망가지든 말든, 나라가 망하든 말든 저만 잘되면 그만인 탐욕스러운 인간들을 이릅니다. 우리 사회를 피폐케 하는 각종 부조리와 갈등과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도 그들로부터 파생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람 인(人)자가 의미하듯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고,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 상생하고 공생할 수 있는. 아무리 잘나고 힘 있고 돈이 많아도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줄 모르면, 올챙이 적 생각 못하면, 이웃과 사회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면 바벨탑 무너지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2008년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영화가 생각납니다. 당대 최고 배우들인 이병현, 송강호, 정우성이 주연으로 출연해 인기몰이했던 블록버스터 영화였죠. 일제강점기 만주 벌판이 주 무대이지만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찍은 것 같은 한국식 서부극이었는데 나쁜 놈 역의 이병헌의 연기가 압권이었어요. 나쁜 놈인데 매력 넘치는 나쁜 놈이었으니.

각설하고 가끔씩 나쁜 놈 행세를 하며 살지라도 나뿐인 놈만은 되지 맙시다. 어느 대중가요 노랫말처럼 당신뿐이고, 하느님뿐이고.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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