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우는 바람소리
숨어 우는 바람소리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4.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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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냉이가 하얀 소미꽃을 호로로 피웠다. 벚꽃 잎이 휘리휘리 날리어 잔꽃위로 사뿐히 앉는다. 온통 꽃밭이다. 봄의 향기를 맛보고 싶어 찾아 헤맬 때는 보이지 않던 냉이가 온 밭을 장악하고 있었는지 꽃이 피어서야 알았다. 바람이 꽃대를 흔들어 앙증맞은 애교를 부린다. 이 꽃은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예쁘다.

언제나 휘엉휘엉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보고 바람을 알아차렸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작은 풀꽃에 이는 봄바람을 보았다. 이즈음에 피는 꽃만큼이나 예쁜 이름이다. 꽃샘. 잎샘. 화투연(花妬娟). 꽃불을 질러 놓은 것도, 그 불을 온 세상에 번지게 한 것도 바람이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나보다 열댓 살 위다. 알고 지낸 지 스무 해를 넘기도록 남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긍정적이고 겸손한 분이다. 글을 쓰면서 시작된 만남이지만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나보다도 감성이 풍부하여 소녀 같다.

그분의 부군은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다. 아파도 옆에서 챙겨주는 법도 없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멋없는 남편이었다. 부인은 그저 일을 부리는 도구로 생각한다고 했다. 외골수로 보수적이고 무심하여 많이 답답하고 힘들어했다. 그녀의 낭만을 억압하고 넘치는 감성을 눌러버리는 야속한 사람이었다. 부부의 틀에 순응하며 사느라 입은 상처는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웠다.

부군의 병환소식을 들은 지 두 해 만에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지인들은 연세도 있으니 망인에게는 안 되었지만 슬퍼하기보다 반기는 내색이었다. 조문을 온 손위의 지인은 귓속말했다. “B여사. 이제 날개를 달은 겨.” 모두들 그 말에 동참하는 눈치였다. 정작 많이 힘드냐고, 얼마나 아프냐고 위로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했다.

그녀가 지아비의 구속에서 벗어나 한껏 훨훨 날아오르기를 기대했다. 자유의 지느러미를 달고 넓은 바다를 맘껏 유영할 줄 알았다. 늘 한쪽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벗고 달라진 환한 얼굴을 기다렸다. 구속의 사슬을 벗어 던지고 자적하리라 믿었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 중에 가장 강도가 세고 오래가는 것이라고 한다. 사별의 반응은 네 단계로 처음에는 충격으로 오고 다음은 죽음을 부인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슬픔이 밀려온 후에는 그리움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어찌 부부의 정을 사그리 무시하고 홀가분하리라 속단했는지 후회가 된다. 옆 사람의 부재는 둘이 공유한 시간을 잊는 것이다. 때로는 미풍으로도 잠잠해진 기억들이 먼지처럼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걷히다가도 금세 희뿌옇게 마음을 흐려 놓는 법이다.

그녀에게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다들 괜찮을 거라 미리 속단하여 위로조차도 받을 기회가 없었다. 아무도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볼 새라 억눌러 참아 쌓아둔 감정이 우울로 빠져들게 한 듯 보인다. 사별한 지 여섯 해가 지난 지금도 어두운 얼굴이 안쓰럽다.

낮은 곳의 작은 풀꽃도 바람을 탄다. 하물며 사람과 이별로 인하여 허허로운 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랴. 섧은 바람소리를 듣는다. 끊어질 듯 간신히 이어지는 비파소리 같은 바람소리를 듣는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 우는 그녀의 울음소리인 것만 같아 자꾸만 귀를 세우고 있다.

꽃잎을 다 떨어뜨리는 화투연(花妬娟)이라 해도 좋다. 지금쯤은 그리움이 밀려와 차여 있을 터이다.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그녀를 위해 바람아 더 세게 불어다오. 그녀가 목청껏 울 수 있도록. 그때 못한 슬픔을 꽃잎이 떨어진다는 핑계를 대고 나도 같이 펑펑 울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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