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유혹 … 가짜 석유 판친다
검은 유혹 … 가짜 석유 판친다
  • 조준영 기자
  • 승인 2019.04.21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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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상승세 … 불법 제조·유통·판매행위 기승
충북 최근 3년동안 연료유 품질검사 174건 적발
세금탈루-기계사고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 야기도

건설기계 임대업을 하는 A씨(55)는 오랫동안 `유류비' 탓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가 소유한 건설 기계만 5대. 하루가 멀다고 치솟는 기름값은 곧 가계 부담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을까?' 늘 고민해봤지만 뾰족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중 하지 말아야할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기계에 들어가는 경유를 직접 만들어 쓰자.' A씨는 생각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경유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난방용 연료인 등유와 경유를 일정 비율로 섞어 기계에 넣기만 하면 됐다. 특별한 기술 없이 만든 `가짜 경유' 덕에 A씨는 유류비를 절반 가까이 줄이는 이득을 봤다.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가짜 경유로 유류비를 줄일 수 있다는 소식에 운전기사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A씨는 이들에게 가짜 경유를 판매하기로 결심, 청주지역 모처에 탱크로리를 설치해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제조 원료인 등유와 경유는 인근 주유소 2곳에서 조달받았다.

지난해 11월부터 만든 가짜 경유는 모두 2만2000ℓ. A씨는 이 중 1만5000ℓ를 팔아 2500여만원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불법 주유소 사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가짜 경유 판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수사에 나선 까닭이다.

결국 A씨는 석유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됐다. 시중 가격보다 30~40% 가까이 싼 가짜 경유를 구매한 운전기사 6명과 원료를 제공한 주유소 업자 2명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가짜·저질 석유 유통 행태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자'와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자.' 두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불법 행위는 근절되지 않는 모양새다.

18일 한국석유관리원 충북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2016~2018년)간 도내 연료유 품질·유통검사 적발건수는 모두 174건이다.

연도별로는 △2016년 48건 △2017년 65건 △2018년 61건이다. 2016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27%(13건)나 늘었다.

적발 유형별로 보면 등유를 차량·기계연료로 판매한 경우와 품질부적합이 각 5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품질부적합 정량미달 35건, 가짜석유제품 29건 순이었다.

특히 충북에선 등유를 차량·기계 연료로 판매하는 행위가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북부(제천·단양)지역에서 시멘트 등 광공업이 발달, 건설기계 연료사용이 높은 데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등유를 차량·기계 연료로 판매하는 행위는 주로 유종별 세금 격차를 이용해 세금 혜택을 보려는 소비자 수요가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등유 등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의 제품을 경유와 섞어 판매하거나 사용하는 건 엄연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가짜 석유 제품 불법 유통은 시장경제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한 해 가짜 석유 유통으로 인한 세금 탈루액만 6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뿐만 아니다. 가짜 석유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 차량·기계사고와 같은 문제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작은 이익 때문에 `검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들이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집계한 최근 5년(2014~2018년)간 도내 석유·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위반 적발 건수는 183건이다. 검거 인원만 267명(구속 4명·불구속 263명)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돈이 되는 까닭에 가짜 석유 유통·판매는 물론 구매 행위까지 날이 갈수록 지능·음성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유관 기관과 적극 협조해 가짜 석유 제조·유통·판매 범죄에 대해 수사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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