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엿소리
상엿소리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04.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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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어디선가 구슬픈 소리가 들린다. 많이 들었지만 잊힌 지 오래된 듯, 그러나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애틋하면서 구성진 그 소리, 상엿소리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나는 곳을 따라가 보았다. 상엿소리는 뜻밖에 시장통 한복판이었다. 앞에는 수십 기의 만사(輓詞)가 꽃상여의 길을 열고 그 뒤를 베옷을 입은 상주들이 뒤따르는데 상두꾼의 상엿소리와 상여꾼들의 후렴 소리가 어우러진 옛 장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만장 같은 집을 두고, 북망산천 찾아가네/나비나비 호랑나비, 날과 같이 청산 가세/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 보고 웃지마라/여보시오. 시주님네, 이내 말씀 들어 보소/이 세상 나온 사람, 뉘 덕으로 나왔는가/석가여래 공덕으로, 칠성님 전 명을 빌고/아버님 전 뼈를 빌고, 어머님 전 살을 빌고/이내 일신 탄생하니, 한두 살에 철을 몰라/부모 은공 알을 소냐, 이삼을 당하여도/부모 은공 못다 갚고, 어이없고 애닮 구나/원수 백발 돌아오니, 없던 망령이 절로 난다.

죽음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던 어린 시절. 간간이 동네 사람들이 죽으면 하얀 꽃이 가득 달린 상여를 여럿이 둘러매고 상엿소리라는 것을 하며 들을 지나 산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어린 눈에 꽃상여가 그리도 예뻐 보였는지. 나는 꽃상여에 매료되어 상엿소리를 따라 들길을, 산길을 하염없이 따라 걸은 적도 있었다.

오늘 상엿소리는 사람이 죽어서가 아니다. 초미세먼지를 내뿜는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성 집회였다. 만장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만장 깃발 수가 많을수록 그 사람의 생전 명예와 부의 척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니 요즘 장례식장 앞의 화환의 수가 많고 적음으로 고인의 명예와 부의 척도를 가늠하듯 그런 풍습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하얀색 붉은색 파랑색 노랑색 울긋불긋 수많은 만사(輓詞)에는 죽음을 애도하는 시가(詩歌)가 아니라 `청정지역에 죽음의 연기가 웬말이냐' `대대로 물려받은 문전옥답 버리고 떠날 수는 없다' `주민이 원하지 않는 LNG발전소 건설을 즉각 철회하라'등등 반대문구의 만사다.

액화천연가스 발전소가 들어선다는 곳은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일대 5만여 평이다. 이에 주변 마을 주민들과 음성, 소이, 원남 3개 읍면 주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이다.

미세먼지는 자동차 배출가스나 공장 굴뚝 등을 통해 주로 배출된다. 중국의 황사나 심한 스모그 때 날아오는 크기가 작은 먼지를 초미세먼지라 부르며 지름 2.5㎛ 이하의 먼지로서 PM2.5라고 한다. 대기 중으로 배출된 가스 상태의 오염물질이 아주 미세한 초미세먼지 입자로 바뀌기도 하는데 초미세먼지가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한 것은 허파꽈리 등 호흡기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여기서 혈관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의 원인은 인간이 편의와 소비를 위해 만들어낸 결과다. 편하게 살고, 이것저것 소비하면서 살기 위해 화석연료를 마구잡이로 사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공장과 발전소, 자동차, 난방 등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고는 답이 없다. 하지만, 먹고살고, 돈 벌려고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부는 국내 LNG발전소에서 일산화탄소(CO) 미연탄화수소(UH C) 등 유해물질이 다량 배출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과 관련, LNG발전소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또 2022년까지 미세먼지를 30%까지 줄인다는 계획이라는 점에서 음성군에 추진 중인유해물질을 배출하는 LNG발전소 건설은 취하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르는 세상에, 세상에서 멀어져간 상여광경을 참으로 오랜만에 접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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