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4.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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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는 법정으로 출두하다 법원 앞에서 친아버지를 고발하러 온 에우티프론이라는 신관(神官)을 만난다. 에우티프론의 아버지는 하인을 죽인 집사를 치죄하려고 밧줄로 묶어 놓고 아테네에 의견을 물으려고 사람을 보냈다. 그 사이 차가운 수로에 방치됐던 집사가 죽어버렸다. 에우티프론은 아버지를 집사 살인죄로 고소하기 위해 법정에 가던 중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건 불경한 일일 수 있는데 자신이 불경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에우티프론에게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자신이 경건함-불경함에 관해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답한다. 곧 그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건 신의 뜻에 합당한 일로 자신의 고발이 정당하고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티프론이 잘안다고 생각하는 경건함(불경함)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이로부터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시작된다. 일련의 질문과 답변의 과정을 거쳐 에우티프론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경건함(불경함)을 알고 있는 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경건함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 기초해 아버지에 대한 고발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었던 에우티프론의 논리에 흠결이 생겼다. 이후 에우티프론이 아버지에 대한 고발을 이어갔는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소크라테스는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하려는 에우티프론의 확신을 미심쩍게 바라본 건 확실하다.

유사한 이야기가 중국에도 있다. 논어의 자로 편에 공자와 섭공의 대화가 나온다. 섭공이 말한다. “우리 마을에 곧게 행동하는 직궁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이를(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증언하였습니다.(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이에 공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우리 마을의 곧은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는데, 그 가운데 곧음이 있습니다.(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공자는 소크라테스와 달리 직접적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법정에 고발하는 건 바른 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들의 허물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의 허물을 숨겨주는데 올곧음이 있음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경건함(불경함)을 무엇이냐고 물음으로써 에우티프론의 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공자는 부자간의 인륜을 강조함으로써 부친 고발의 부적절함을 직접적으로 지적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부자 관계에는 법적 송사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허물을 들추지 않고 숨겨주게 만드는 부자관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건 친함(父子有親)이다. 친함에는 법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적인 도리(人倫)가 있다. 이 인간적인 도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에 법적인 다툼, 곧 송사(訟事)가 생긴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인데, 이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릴 때에 법적인 다툼이 시작된다. 최소한의 도리나 인륜이 지켜지고 있는 곳에서는 송사가 일어날 일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송사에 말리는 자식을 두면 안 된다고 말했을 것으로 본다.

부부관계, 부자관계, 친구관계, 스승과 제자 관계, 직장의 상사와 부하 사이의 관계에는 법 이전의 친밀함이 바탕에 놓여 있다.

친밀함이 깨져서 송사에 말려들게 됐을 때 가족이나 조직의 구성원들이 다 자기만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면 가정이나 조직은 풍비박산이 나게 되어 있다. 가정이나 조직에 위험이 다가올 때는 자기만 살자고 덤벼들기보다는 친밀함의 관계를 기초로 공동으로 대처해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그래야 다 살 수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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