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탈출
일상생활 - 탈출
  • 안승현 청주시한국공예관 학예실장
  • 승인 2019.04.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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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안승현 청주시한국공예관 학예실장

 

“형은 300만 원짜리 해외여행이야?”, “뭔 소리?”, “매년 예약만 하고 못 가면서 위약금만 날렸잖아”, “그러네! 하하”

밤 10시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차 한 잔 하면서 주고받는 이야기 속 한 부분이다.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새벽 4시 비행기를 타고 월요일 출근해 모임 단톡방에 후기를 적었다.

`입사 이래 처음 공적인 업무가 아닌 해외에서의 시간, 나이 50이 넘어 처음 해보는 게 너무 많았던, 이래저래 많은 생각과 많이 배운 여행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장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매번 일을 놓지 못하고, 그나마 허락을 받을 때 질책 속에 번번이 포기했던 여행이다.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진행된 여행이라 매일 끼니마다 설거지에 공항 바닥에 수건 한 장 깔고 쪽잠을 청하면서도 동행해준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일이 끊이질 않고, 가슴 통증과 머리가 마비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일을 놓고 싶은 순간순간, 질박하고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겨내려니 너무나 큰 부담으로 이번만큼은 탈출하고 싶었다. 탈출만이 내가 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 탈출구는 너무나 좁았다. 그런데 통과해보니 그리 좁지 않았다. 내 스스로가 좁게 인식했던 거였다. 나도 탈출할 수 있구나.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순간의 방심에 바닷물이 목에 넘어가 숨을 쉴 수 없었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해도 앞뒤로 무겁게 메고 있는 것들과 끊임없이 때리는 파도에 몸은 가눌 수 없었고 바닷물을 계속적으로 들이키고 앞은 보이지 않았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몸이 앞뒤 좌우로 뒤집히니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 숨을 고르자, 숨을 참고 몸부림에서 벗어나자. 어떻게 해도 파도는 날 가만두지 않을 거니 말이다. 숨을 고르며 발에 달린 거추장스런 것을 벗고 고르지 않은 바닥이지만 디뎌보자.' 몸부림치는 시간이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긴 사투의 시간을 끝내고 무거운 것을 메고도 난 일어날 수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려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달았던 것을 벗어버리니 너무나 편했다. 혼미한 사투 속에서 벗어나 보이는 풍광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일어서니 사투의 장은 가슴을 조금 넘을 정도의 물속이었다.

탈출의 대가는 혹독했다. 현지에 도착하면서 시시각각 괴롭히는 정보에 머릿속은 복잡하다 못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가슴의 통증은 더했다. 그래도 동행한 사람이 있어 내색하지 못하고 함께 했다. 그리고는 나름의 사고를 경험했다. 차라리 돌아가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살려고 버둥거렸다.

나름의 사투 속에서 난 포기하지 않았다. 파도에 대항하지 않고 조류에 몸을 맡기고 하나가 되고자 했다. 숨을 고르고 즐기기 위한 장치를 하나하나 벗었다. 나만이 오롯이 있으니 나에게 달려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기 위한 나름의 판단이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순리에 몸을 맡기는 것도 괜찮다 생각했다. 내가 갖고 있는 실력을 아니 대항한다는 것만이 답이 아님이라 생각한 것이다. 나름 이겨나가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앞좌석 머리 시트에 이런 글이 있었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헤르만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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