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의 숨겨진 영웅 이광악 장군
진주대첩의 숨겨진 영웅 이광악 장군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9.04.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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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지난해 온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드라마가 `미스터 션샤인'이다. 이 드라마는 19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대한제국 시대 의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신미양요 때 조선의 노비 출신 소년이 미국 군함에 승선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미국 해병대 장교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와 양반 가문의 영애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여 다른 나라에서는 없는 의병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 온 국민의 감동을 자아냈다.

`의병'을 사전에 찾아보면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국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외적에 대항하여 싸우는 구국 민병'이라고 적혀 있다. 역사적으로 유난히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우리 민족은 스스로 일어나 가족과 지역과 나라를 지키는 의로운 군대가 되었던 것이다. 멀리는 고구려와 백제의 국가 부흥 운동에서 가까이는 항일의병 투쟁까지…. 특히 임진왜란 때 의병정신이 항일의병투쟁으로, 그리고 항일 독립 투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 승리는 백성과 동고동락하면서 솔선수범한 지휘관의 탁월한 용병술과 전략으로 의병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 결과이다. 이 진주대첩에서 김시민을 도와 승리를 이끌어 낸 장수가 바로 충장공 이광악 장군이다.

이광악(1567~1608)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1584년(선조 17년) 무과에 급제하고, 1592년 곤양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일의 명을 받아 진주성에 들어가 김시민을 도와 싸웠다. 전투 도중 김시민이 부상을 당하자, 그를 대신하여 병사들을 지휘한 끝에 일본군을 물리치고, 진주성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은 1차와 2차에 걸친 혈전이었다. 1차 혈전은 1592년 10월, 3만의 왜군 연합부대가 공격해 왔으나 진주 목사 김시민과 의병 곽재우가 합세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2차 혈전은 1593년 6월, 1차전의 패전을 설욕하고자 대군으로 공격, 의병인 고종후, 강희열 등이 참가해 항전하다 전원이 전사했다. 이후 이광악 장군은 1598년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명나라군과 합세하여 금산과 함양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광악 장군은 싸움에 임해서는 항상 선봉에서 적을 맞아 싸워 아군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고, 특히 활을 잘 쏘아 화살 하나에 3~4명을 죽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무공신 3등으로 봉해졌다.

이광악의 묘소는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탑말에 있다. 이곳에는 조부 이연경, 아버지 이호약의 무덤과 함께 있는데, 무덤 아래쪽 사당인 `문효사(文孝祠)'에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광악의 선무공신교서는 원래는 불정면 삼방리의 후손가에 전해져 오다가, 장군이 쓰던 보검과 얼굴이 그려진 영정 등과 함께 1987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어 관리하고 있다. 보물 제952호인 이 문서에는 이광악의 자질과 품성, 경력, 진주성을 방어하는데 세운 무공과 공신에게 내리는 혜택 등이 실려 있다. 이 문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의 상황을 알아보고, 그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한 포상 내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자랑스런 조상의 역사를 더 자랑스럽게 만들 책임과 의무가 우리 후손에게 있음을 알고 가까운 역사부터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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