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04.15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나에게는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 가족들이 생각하는 나와 친구들이 생각하는 나, 동료에게 인식되는 나는 같지만 서로 다른 모습들이 존재한다. 20대에는 그런 내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진정한 나가 누구인지 규정하고 싶었으며 다른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아 나 자신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점점 들어짐에 따라 이러저러한 내 모습들이 모두 나임을 알아버렸다. 누구에게 비쳐지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시선이 신경 쓰여 나는 더욱 나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책 선물을 받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의 동화책이나 그림책만 달고 사는 나에게 친구는 감성이 메말라 보인다며 가볍게 읽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쇼코의 미소'(최은영 저·문학동네·2016) 책을 보냈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그 대답에 마음은 담지 못했었다. 책을 들고 잠시 감동을 느끼곤 저만치 내려놓았다. 언젠가 읽어야지 목록에 한 권이 더 추가된 딱 그 정도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2019 책 읽는 진천'의 후보도서란다. 자세히 뜯어 읽어보니 쟁쟁한 소설가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호기심이 작동되기 시작됐다. 읽어 보고 싶었다. 과연 나는 흐름이 끊기지 않게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있었지만 도대체 어떤 책 이기에라는 궁금증이 더 컸다.

이 책은 7개의 단편소설을 묶어 놓았다. 중간 중간 쉬다가 읽어도 좋다. 오히려 한 편 한 편 읽다가 내려놓고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 더욱 좋다. 쇼코의 미소를 설명하는 구절에서 나는 멈칫했다. 예의 밝은 표정, 애써 웃는 얼굴 그러나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쇼코의 미소에서 나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밝고 희망찬 이야기로 가득한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와 자살과 일탈을 일삼는 내용으로 소유에게 보내는 편지는 모두 쇼코 본인의 모습인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내가 떠오른 것이다. 작가는 에둘러 사람은 모두 여러 개의 모습을 가지고 산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작가는 7개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사람들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과거를 애써 부정하는 사람,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가족으로부터 나를 격리하는 사람 등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오랜만에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던 20대의 나를 만났고, 타인의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싶었던 10대의 나를 만났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적당한 거리를 중요시했던 내가 이러저러한 세월을 거치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쇼코처럼, 소유처럼 혹은 응웬 아줌마처럼 산다. 그렇게 더욱 단단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