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그라미는 지금
내 동그라미는 지금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4.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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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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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있다. 그는 자신의 한 조각을 채우지 못해 슬펐다. 어느 날, 완벽해질 동그라미를 상상하며 짝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데굴데굴 굴러가며 부르는 노래 “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나, 이제 찾아 나선다. 잃어버린 나의 한쪽을.” 한 조각이 없으니 당연히 빨리 구를 수 없어 벌레를 만나 이야기하고, 꽃을 만나 향기를 맡고, 풍뎅이와 경주라도 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천천히 굴러간다. 바다를 건너고 늪을 헤치고 밀림을 지나 비탈진 산길을 오르며 꿈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한 조각을 찾아 나선 여행은 색다른 경험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찾은 조각은 너무 작아 헐렁했고, 혹은 맞는 조각인 줄 알았지만 비탈길을 오르다 잃어버린 조각도 있었다. 구덩이에 빠지고 돌담에 부딪혀 코도 깨고, 한 조각을 찾는 여행은 떠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되는 경험과 고통도 있었다. 성취와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동그라미의 노력은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꼭 맞을 듯한 한 조각을 만난다. “넌 누군가의 몸에서 떨어진 조각이니?” -글쎄 모르겠는데- “넌 그저 하나의 조각이길 원하니?” -어느 누구의 조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어때 맞는 것 같니?” -아주 꼭 맞는데- 이렇게 만나 완전해진 동그라미는 무척 기뻤다. 제 짝을 만난 동그라미는 예전보다 훨씬 빨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 굴러가게 되어 벌레도 꽃도 나비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누리던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너무 꼭 맞는 짝을 찾은 동그라미는 입이 열리지 않아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결국 동그라미는 생각 끝에 꼭 맞는 한 조각을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 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나비와 벌레, 꽃과 향기 등 모두가 이 빠진 동그라미의 짝이 된다. 진정한 도반(道伴)을 만난 것이다.

이 빠진 동그라미가 찾는 짝을 의미확장 한다면 어디 짝뿐이겠나 싶다. 이것은 존재론적 사고에서 관계론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잃어버린 짝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뜻밖의 존재들을 만나 즐겁고 의미로운 시간을 보낸다. 결핍은 삶의 에너지가 되듯이 이런 결속의 과정을 통해 존재의 임계점을 벗어나 관계 맺음이라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된다. 어느 순간 기적처럼 찾아진 꼭 맞는 짝은 어쩌면 주체적인 삶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나의 의지대로 삶을 주도하기보다 너무 빨리 살아지는 생의 속도에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쳇바퀴 속에 갇혀 버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완벽을 추구한다. 또한, 꼭 맞는 짝을 찾아 맞춰보고 계산해 보는 것을 탓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지나간 생의 여정을 돌아보면 삶의 과정에서 만나는 동역자가 결국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기도 한다. 분명 모두는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박노해는 자동으로 열리는 길, 오늘 가고 있는 길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그 때, 다른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은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온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무수히 많은 길, 내가 찾아가는 것 같지만 길이 나를 향해 마주 걸어와야 만날 수 있다. 길과 새로운 관계 맺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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