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의 맥가이버칼, 주먹도끼
구석기시대의 맥가이버칼, 주먹도끼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9.04.14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360만년 전의 가장 오래된 인류 발자국이 탄자니아 라에톨리유적에서 발견됐다. 당시 화산폭발로 라에톨리유적 일대는 15cm 두께로 화산재가 뒤덮여 있었다. 비가 내려 질척한 상태에서 꼿꼿이 서서 앞을 향해 나란히 걸어간 두 사람과 그들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간 다른 한 사람의 발자국이 코끼리·코뿔소·원숭이·토끼 등 20여 종의 짐승 발자국과 함께 뚜렷하게 새겨졌다.

빗물과 화산재의 화학반응으로 표면은 급속히 굳어졌고, 새로운 화산폭발로 그들이 걸어갔던 발자국은 화산재로 뒤덮여 잘 보존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퇴적층은 지속적인 침식으로 발자국들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세 명의 고인류 발자국은 보폭이 39~48cm으로 현대인의 보폭보다 작아 짧은 다리였음을 알 수 있다. 1976년 고인류학자 메리 리키박사가 이 일대를 조사하던 중 발견한 발자국으로서 가장 오래된 인류행위의 흔적이다.

직립보행의 흔적을 남기고 100만년이 흐른 260만년 전, 인류는 처음으로 석기를 만들어 썼다. 자갈돌의 한쪽 가장자리를 가공해 날을 세운 찍개석기(Chopper-Chopping tool)는 인류가 만든 최초의 석기이다. 이 석기를 만든 주체는 호모하빌리스(H0mo habilis)이다. 나무나 짐승뼈를 가공하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찍개가 제작된 이후 또다시 100만년이 지난 16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는 구석기의 으뜸인 주먹도끼(握斧,手斧,兩面核石器,Hand-axe)를 제작했다. 주먹도끼는 형태적으로 뾰족한 끝, 긴 석기축, 양면에 잘 다듬어진 곧은 날, 좌우대칭면 등을 특징으로 전체적으로 타원형의 형태를 이룬다. 기능적으로는 주먹으로 쥐고 사용했던 석기이다. 참으로 잘 만들어진 석기다.

석기를 만들기에 앞서 전체 디자인과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게 주먹도끼이며, 15~20cm 정도의 대형 석기를 정형되고 규칙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특정한 기술이 있음을 보여준다. 좋은 돌감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 돌감을 다룰 수 있는 기술, 돌감의 기계적 특성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지식, 예술적인 감각, 좌우대칭 이미지에 대한 인지능력, 기술적으로 복잡한 제작공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제작되었기에 높은 수준의 디자인 완성도를 보인다. 그래서 구석기의 으뜸석기라 한다. 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이나 후기 구석기시대까지 오랫동안 사용된 것도 이 석기가 갖는 효용성이 매우 컸음을 말해 준다.

석기는 길이와 너비가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길이가 증가하면 너비도 증가한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들이 기하학적인 의미에 비율의 감각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석기를 좌우대칭으로 만들 수 있는 제작기술이 있음은 인지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들은 머릿속에 구체적인 석기형태의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이를 복합적인 기술을 적용해 도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쓴자국 분석결과 주먹도끼는 짐승의 사냥과 도살-해체, 나무나 가죽, 뼈의 가공 등 기능면에서 보면 자르는 작업, 찧는 작업, 긁는 작업, 찍는 작업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다기능석기로서 오늘날의 맥가이버칼에 비유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주먹도끼는 전기~후기 구석기시대까지 폭넓게 출토되며, 아프리카-유럽의 주먹도끼와는 달리 좌우대칭면을 이루지 못하고, 석기의 중심축이 기울어져 있으며 두께가 두꺼운 특징을 지닌다.

구석기인들의 지혜와 기술전통이 남아 있는 주먹도끼는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복잡한 제작과정을 거쳐 만든 것으로 그들의 생각과 기술을 기록한 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우리가 구석기인들의 인지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