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일본이 부럽다
가끔은 일본이 부럽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4.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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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일본 정치를 접하다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생긴다. 원로 중심의 보수정치로 정평이 나있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피를 수혈해 재목으로 키워내는 세대교체의 역량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가 홋카이도(北海道) 지사에 당선됐을 때도 그랬다. 38살인 그는 역대 일본 최연소 지사 타이틀을 갖게 됐다. 그는 정치신인도 아니다. 8년 전 30살 때 홋카이도 유바리(夕張)시 시장에 당선된 후 재선을 거쳐 이번에 지사까지 올랐다.

지난 2017년 아사히TV가 차기 총리 선호도를 조사하는 여론조사를 했다. 현 아베 총리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한 인물이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의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가장 유력한 차기 자민당 총재로 꼽힌다. 4선 의원이지만 나이는 38세에 불과하다. 28살 때 의회에 입성한 후 내리 4선을 달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이지만, 그의 정치적 성취를 아버지의 후광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그는 소신을 위해 당론을 거스르기도 하고 당 총재인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당이 야당과 공조해 밀어붙이던 우정국 민영화법 개정안을 반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사학스캔들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아베 총리를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여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과실을 들어 공격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 당의 뜻을 거부하고 총재까지 비판하는 젊은 패기를 용인하고 다선의 길을 열어준 자민당의 도량이 가늠될 것이다.

우리 20대 국회의원 평균연령은 55.5세이다. 역대 최고령 의회라고 한다. 40세 미만은 1%인 3명에 불과하다. 단체장 중에서는 광역과 기초를 통틀어 40세 미만은 한 명도 없다. 가장 젊은 단체장이 43세에 당선된 임병택 시흥시장이다. 70년대 정치권을 울렸던 40대 기수론은 이젠 전설이 됐다.

독일은 연방의원 631명 중 40대 미만이 115명으로 20%에 육박한다. 20대도 18명이나 된다. 독일에서는 14살이면 정당 가입이 가능하고 18살이 되면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다. 메르켈 현 총리는 17살 때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8살이 돼도 투표권조차 갖지 못하는 우리와 제도적 차이가 크다. 정치의 수준 차이는 더 크다.

나잇값만 한다면야 늙어가는 정치를 걱정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우리 국회에서는 노장의 관록도 경륜도 보이지 않는다. 개점휴업을 일삼는 무위도식과 저주의 독설만 주고받는 악다구니 정치는 철부지 수준이다. 혈기방장해야 할 초선들은 자신의 안위만 살피는 애늙은이로 변해 맹종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젊은 인재의 진입장벽을 한껏 높이고, 가까스로 장벽을 넘은 신진들은 공천권과 위계로 무릎 꿇리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미래를 준비할 의지도 기력도 없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스즈키 홋카이도 지사는 홋카이도는 물론 시장을 지냈던 유바라시와도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는 홋카이도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 출신이다. 도쿄도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대에 유바라시에 파견돼 2년여 근무한 것이 인연의 전부다. 그는 획기적인 정책을 발굴해 폐광도시로 침체에 빠진 유바라시에 재기의 발판을 구축했다. 그의 능력과 열정을 눈여겨봤던 주민들은 도쿄로 돌아간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시장에 출마한 그를 당선시켰다. 유바라시와 홋카이도 유권자들은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지역과 아무 연고도 없는 외지 청년을 능력만 보고 리더로 영입한 것이다. 유권자부터 혈연과 지연과 학연과 이념의 거미줄에서 벗어나야 정치를 바꿀 수 있다. 홋카이도 선거는 암울해져 가는 대한민국 정치에 유권자의 책임은 없느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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