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속에서도 봄꽃은 핀다
미세먼지 속에서도 봄꽃은 핀다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1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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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산성 너머에 있는 우리 동네는 이제야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시내보다 기온이 3~4도 낮다보니 항상 꽃소식이 늦지만 시내를 오가면서 늦게까지 봄꽃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특히 먼 산 중턱에 띠를 두른 것처럼 하얗게 수놓는 산 벚꽃은 아름다움의 백미이다.

봄꽃 중에서 목련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피는 꽃 중의 하나이다. 웬만한 마당이 있는 집에는 목련나무가 한그루 쯤 있기 마련이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 마당에도 목련나무가 있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하얀 꽃 봉우리가 흐드러지게 피는 날이면 마당에 나가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하는 가곡을 흥얼거리며 그 아름다운 자태에 흠뻑 취하게 했던 꽃이다. 그러나 그 꽃이 질 때는 애처롭다. 청초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그 잠깐의 절정을 지나 누렇게 지기 시작할 때부터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다. `툭'하고 수직낙하 하듯 떨어져 나무 밑에서 뒹구는 꽃의 잔해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꽃구경도 시들하다. 하늘 가득한 희뿌연 미세먼지가 꽃구경의 정취를 앗아가 버렸다. 마스크와 꽃구경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창문을 열고 방안 가득히 봄바람으로 채우고 싶은 생각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세먼지를 채울까 두렵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봄철에만 일시적으로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를 걱정했는데, 요즈음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미세먼지를 두려워하게 됐다. 발생원인도 중국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만큼 국내에서 발생하는 먼지의 량도 늘어났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하여 청풍명월의 고장이라고 불리던 충북이, 그중에서도 청주가 전국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것은 잘 산다는 의미와 가치를 경제성장에 두고 물욕주의 정책을 펴나간 결과이다. 야산을 밀어 산업단지를 만들고, 아파트 물량이 남아돌아도 도시공원과 논, 밭을 파헤치고 메워 아파트를 짓는 야만적 행위가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고, 청주의 역사적 뿌리라고 생각되는 가야인 들의 집터가 무더기로 발굴돼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땅을 파헤치는 한 청주가 옛 명성은 되찾기는커녕 숨쉬기조차 어려운 도시로 전락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권세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정점에서 국민들의 주목을 받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초라한 모습으로 사그라지는 정치인이나 개인의 야망을 위해 사회적 정의나 인간적인 도리를 헌신짝처럼 버렸던 많은 유명 인사들의 말로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하더라도 맑을 청(淸)자의 도시 청주가 미세먼지의 도시로 전락하는 것만은 보고 싶지 않다. 공단의 도시보다, 아파트 숲의 도시보다는 맑고 푸른 도시를 후손에 물려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경제학자 슈마허가 썼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는 오늘도 유효하다. 봄꽃 중에서 벚꽃이나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등은 꽃이 작다. 한 송이나 한 나무의 꽃으로는 빛나지 않는다. 많은 꽃이 서로 어울려야 아름답다. 그래서 군락을 이뤄서 함께 꽃이 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바람에 흩날려 눈꽃처럼 내리기도 하고, 언제 지는지 모르게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산화한다.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밑에서 이 작은 꽃들을 마음껏 바라보고, 우리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으로 새겨 다음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가득한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행정당국과 개발주체들이 열을 내며 내세우는 명분과 그들의 권위에 비하면 시민의 목소리는 작다. 그러나 맑은 청주를 가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는 소중하고 아름답다. 작은 봄꽃들처럼 여럿이 함께 어우러지는 겸손함과 그들이 떠난 후에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그런 지방정치가 정착되기를 꿈꿔본다. 뿌연 미세지 속에서도 산 벚나무들은 흰 눈꽃을 피워내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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