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농장과 만배농장
장수농장과 만배농장
  • 최승옥 수필가
  • 승인 2019.04.11 2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최승옥 수필가
최승옥 수필가

 

`윙윙윙'굴착기 소리가 요란하다. 남편은 굴곡진 땅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 중이다. 작업이 끝나면 복숭아 묘목을 심을 예정이다. 한가운데 땅을 길게 파 물꼬를 만들고 나니 굴곡진 땅은 이내 잘 다듬어져 넓은 밭으로 만들어졌다.

`휘리릭, 휘리릭'방향을 알 수 없는 봄바람을 꽉 붙잡을 수도 없고 비닐 줍는 아낙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걸까 끊임없이 훼방을 놓는다. 그 사이 옆 동네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남편과 같은 굴착기 일을 하며 복숭아 농사를 짓는 옹골 부부다. 이참에 하던 일을 멈추고 아늑한 밭둑으로 나가 잠시 바람을 피한다. 언제 봐도 온화하고 늘 잔잔한 미소를 띠는 부부는 애초부터 농사꾼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노후대책으로 음성경계인 괴산의 옹골이라는 동네에 땅을 샀다. 남편이 가끔 음성에 내려오고 나면 마음이 바뀌었다. 음성으로 내려와 살고 싶어했고 집을 짓기를 원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귀촌하자는 뜻을 내비쳤으나 묵묵부답으로 지나쳤다. 아내는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 갈등을 겪었단다. 왜 안 그렇겠나 싶다. 평탄한 직장생활을 접는다면 과연 농사로 수입이 이뤄질지, 고심이 얼마나 많았겠나. 도시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농촌 생활을 하자는 제안에 고심하지 않을 부인이 어디 있을까.

부인의 승낙이 떨어지자 괴산과 음성 경계인 `옹골'에 집을 짓고 내려왔다. 집 바로 옆 밭에 50그루의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어느덧 6년째 접어든 남편의 이름은 `오만배'.

귀농인들이 농촌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땅 일구기가 만만하지 않아 노동에 낙심하고 소득은커녕 빚을 얻지 않고 사는 것만도 성공이다. 무엇보다 현지인은 도시인을 경계하고, 도시인은 현지인들이 답답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옹골부부는 인기가 좋다. 사람이 착하고 다가가기를 좋아해서인 것 같다. 복숭아 공부에도 열중이고 무엇이든 배우며 도와주려는 마음씨가 인심을 얻었다. 이름답게 오만 배로 넉넉한 사람이다. 해서 동네 사람들이 농장 이름을 지어 줬다. `만배농장'이라고.

오늘도 일을 마치고 우리 과수원으로 놀러 왔다. 남편은 굴착기 옆에서 일을 돕고, 그의 아내는 복숭아나무 밑에 있는 볏짚을 밭고랑에 깔아주는 일을 거들어준다. 이 일이 처음인데도 야무지다.

우리 역시 남편의 직업인 굴착기만으로 생활을 해왔었다. 몇 해 전 밭을 사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생각지도 않게 농부가 되었다. 남편의 이름인 `김장수'에서 성을 빼고 `장수농장'으로 이름을 달았다. 막상 땅을 일구고 복숭아 농사에 뛰어들고 보니 힘들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 수고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처음 복숭아밭을 일굴 때 이웃의 도움이 없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이웃의 도움에 비하면 옹골 부부에게 해준 것이 없음에도 그들 부부는 늘 다가와 먼저 힘을 준다.

그녀가 전화해 점심을 먹으러 오란다. 일은 우리 과수원에서 하고 밥은 늘 그녀의 집에서 해결하게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귀찮을 법도 한데 행복하게 사람을 맞는다. 북적북적한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내려오니 적적한 면도 있겠지만 천성이 따듯하다.

`만배농장'과 `장수농장', 이런 인연이 또 어디 있을까. 변함없이 장수하여 일품 맛으로 만배 만큼의 복숭아로 성공하길 소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