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자와 욕먹는 자
욕하는 자와 욕먹는 자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9.04.11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 각자의 생각 및 언행의 차이로 인해 크게 서운해 하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가 백만 원짜리 수표와 쉰내 나는 족발 뼈다귀를 동시에 발견했다면, 당연히 쉰내 나는 족발 뼈다귀 물고 멀리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편안하게 엎드려서, 누군가 자신의 족발 뼈다귀를 빼앗으려고 다가오지 않는지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물고 달아난 쉰내 나는 족발 뼈다귀를 맛있게 먹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의 짓에 대해 누구도 비난하거나 지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개와 인간의 서로 다름을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특히 서로 친밀하다고 느끼는 사이일수록, `이래야 하고 저래선 안 되고'등의 자기 생각을 은근히 강요하는 경향이 짓다. 물론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설 立(립)과 나무 木(목)과 볼 見(견)을 합쳐 놓은 친할 親(친)자가 의미하고 있듯이, 나무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 않고 굳건하게 한 곳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이다. 그러나 친한 사이라고 해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같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과 다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면 서운해 하기 일쑤다. 심지어는 네가 틀린다고 충고 내지 지적을 하거나, 분노하는 경우마저 있다. 심할 경우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다투다가, 다시 보지 않는 원수 사이로 전락하기는 일마저 발생한다.

왜 개가 백만 원짜리 수표를 외면하고 쉰내 나는 족발 뼈다귀를 물고 달아나는 짓에 대해 선뜻 인정하고 문제 삼지 않듯이, 자신과 친밀한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선 너그럽지 못한 것일까? 몹시 서운해 하면서 충고 내지 지적을 하거나, 분노하게 되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가 세워놓은 이래야 되고, 저래선 안 된다는 잣대를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과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신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허물어짐에 따른 상실감이 분노의 감정이 되어서 폭발하게 된 것일까? 상대와 소통이 이뤄지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생(相生)하면 되고,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좁히지 못하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더 이상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부처님과 한 이교도 사이에 벌어진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이교도가 부처님을 찾아와 온갖 욕설을 퍼붓자,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의 욕설을 묵묵히 다 들으신 후에 질문하셨다. “그대의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했는데 손님이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 차지가 되겠는가?” 외도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손님이 안 먹으면 그야 도로 다 내 차지지.” 그러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도 그대가 퍼 붓는 욕은 받지 않겠네.”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서 상대가 아무리 욕을 하고 비난을 해도 마음이 동(動)해서 같이 맞장구치고 화를 내며 헐뜯지 않는 한, 아무런 욕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 등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일이 없으니, 서운해 하거나 다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 자신을 욕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세치 혀가 일으키는 바람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며 일일이 반응하지만 않는다면 그 뿐이다. 오직 욕하는 자만 존재할 뿐, 그 어디에도 욕먹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